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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과 훈녀

소설 속 새말 12 훈남과 훈녀   [lead-para]요즘 대세는 예쁘고 곱상하게 생긴, 옷섶 너머로 탄탄한 복근 하나쯤 숨겨둠 직한 조각 같은 남자 ‘꽃미남’이 아니다. 모나지 않은, 좋은 성격과 순수함으로 무장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남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매너 있는 남자. 훈훈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닌 남자. 얼굴은 못생겼어도 뭇 여성들의 여심을 뒤흔들 만한 남자. 요즘 그런 ‘훈남’이 뜨고 있다.[/lea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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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의 원조는 단연 축구 선수 박지성이다. ‘완소 훈남 박지성’ 《국민일보 2006. 6. 30.》. ‘완전 소중한 훈훈한 남자’의 첫 글자만을 따 줄인 말이 ‘완소 훈남’이다. 당시 대표적인 꽃미남이었던 원빈과 박지성의 외모를 떠올려 보라. ‘훈남’의 조건이 ‘외모’는 아니다. ‘꽃미남’의 절대적 가치가 ‘외모’에 있었다면, ‘훈남’의 절대적 가치는 ‘내면’이다. 물론 ‘꽃미남’의 외모와 ‘훈남’의 ‘내면’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남자다. 그런 남자를 꿈꾸는 여심은 죄가 아니듯, 남자들도 ‘꽃미녀’의 외모와 ‘훈녀’의 내면을 두루 갖춘 그런 여자를 꿈꾸며 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미모마저 겸비한 ‘훈남, 훈녀’가 대세다.

 

우리 사회에 ‘훈남’과 ‘훈녀’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꽃미남 시들 훈남 뜬다 …… 못생겨도 성격 좋고 순수 성실 《국민일보, 2006. 6. 30.》

찬바람이 도는 도도한 매력보다는 시골 소녀처럼 해맑은 미소에 천방지축 귀여운 훈녀들이 인기다. 《매일경제, 2006. 7. 14.》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남자는 ‘훈남’, 여자는 ‘훈녀’이다. ‘훈남, 훈녀’와 같은 유행성 신조어들은 일시적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 주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이 운명이다. 그들은 그들을 살아남게 하는 사회적 원동력인 풍자의 대상과 그 운명을 같이 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생명력이 있는 유행성 신조어들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다. ‘훈남, 훈녀’가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의 일이다.

 

단정하고 지적인 모습, 그리고 간간히 지어 보이는 미소에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얼핏 봐선 훈남 같은 어쩜 매우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일 듯한 느낌의 남자였다. 《김현숙, 홋카이도 3월의 눈2010》 이름은 박현수. 나보다 두 살 많아. 얼굴이 이름 따라간다잖아. 이름도 훈훈하지 않냐? 어쩌다 이런 훈남이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을까? 《고예나, 클릭 미2011 지원 이유는 종합병원에 훈남, 훈녀만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다. 《정수현, 페이스 쇼퍼2010

 

‘훈남’은 ‘훈훈한 남자’, ‘훈녀’는 ‘훈훈한 여자’의 첫 글자를 따 만든 준말이다. 이러한 조어 방식으로 만들어진 말들은 ‘훈남, 훈녀’뿐만은 아니다. ‘강추강력 추천,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까도녀까칠한 도시 여자, 깜놀깜짝 놀람,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따도남따뜻한 도시 남자, 따도녀따뜻한 도시 여자, 먹튀먹고 튀다, 명퇴명예 퇴직, 얼짱얼굴 짱,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완소녀완전 소중한 여자, 쩍벌남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남자,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등 숱한 말들이 만들어지고, 전염병처럼 사회 구석구석에 창궐한다.

 

이쁘다고 자부하고 있는 여자들이 이 관계 속에서 퇴짜 맞는 걸 보면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다고까지 하던데? 누나한테도 강추! 《김연,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2006》 아, 진짜 대박 깜놀!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니까요. 《이재익, 원더풀 라디오2011》 다시는 선생님하고 안 놀아, 정말 듣보잡이야! 《박범신, 은교2010》 지금 빨리 답 문자를 보내 두지 않으면 그다음 문자는 해요체마저 생략한 너네 먹튀하는 사기꾼들이지? 《구병모, 어떤 자장가2011》 하지만 억울한 사람은 어느 세상에나 있는 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명퇴 권고를 받았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임동헌, 자전거를 타는 남자2005》 그것도 얼짱 각도가 있는지 소나무 그늘 밑에서 우람하게 자란 자연산 송이가 따로 없었다. 《권지예, 유혹2011

 

이러한 유형의 유행어들은 그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만들어져 왔다. 1970~80년대에도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아더메치유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고, 얼큰이얼굴이 큰 이,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개성개 같은 성질, 귀빈귀찮은 빈대, 바보바라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사람, 백설공주백만이 설설대는 공포의 주둥아리, 선구자선천적으로 구제 불능인 자, 천재천하에 재수 없는 놈, 특공대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 학구파학교 구내매점의 파리, 호걸호떡집의 걸레’ 등 숱한 말들이 만들어졌다.

 

사흘을 앞당겼다 해서 김부월이가 박호순이나 옥떨메 따위로 곤두박질할 리 없는 이상 오히려 임종술로서는 쌍수를 들어 반겨야 할 마당이었다. 《윤흥길, 완장1983》 야 임마, 너는 왜 갑자기 암상을 떨고 있니? 아더메치유?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더라도 술잔이나 돌려줬으면 좋겠다. 《정종명, 우울한 희극1981

 

‘노찾사, 아더메치유, 얼큰이, 옥떨메’를 제외하면, 1970~80년대의 유행어와 2000년 이후 만들어진 유행어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둘 다 ‘두자어頭字語, 긴 단어의 일부 글자나 어구의 첫 글자를 따 만든 말’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하나는 순수한 ‘두자어’이고깜놀, 명퇴, 훈남 등, 다른 하나는 이미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기존 단어의 의미를 비틀어 반전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귀빈, 선구자, 호걸 등. 전자가 직설적이라면, 후자는 비유적이고 역설적이다. 이러한 유행어의 조어 방식의 차이는 현 시대적 상황과 7, 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연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유행성 신조어들이 사전에 등재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사전에 실리기 위해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시의성時宜性,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사정과 딱 들어맞는 성질’을 가져야 하며, 국어의 일반적인 조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한 적이 없는 유행성 신조어들은 사전에 실린 적이 없다. 이는 사전 편찬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명퇴’와 ‘명퇴하다’는 이미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먹튀, 먹튀하다, 얼짱, 훈남’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다. ‘명퇴’와 ‘훈남’은 문학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로, 한자의 강력한 조어력과 시대를 초월하는 시의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강점을 등에 업고 그 이름을 사전에 올렸다. 그러나 순 고유어로 이루어진 ‘듣보잡’이나 ‘옥떨메’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국어의 일반적 조어 방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문학 작품 속에 쓰임에도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또한 ‘깜놀, 완소남, 완소녀, 차도남’ 등이 사전에 실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명퇴’와 조건이 비슷한 ‘강추’가 앞으로 사전에 실릴지, 이미 사전에 실려 있는 ‘먹튀’나 ‘얼짱’이 계속 살아남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글_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새어휘부 부장.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학 박사. 전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호남문화정보시스템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논문으로는 <전이지대의 언어 변이 연구>, <전라방언의 중방언권 설정을 위한 인문지리학적 접근> 등이 있고, 저서로는 <언어와 대중매체>,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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