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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과 식당밥

소설 속 새말 11 집밥과 식당밥   [lead-para]씀바귀며 고사리, 냉이를 조물조물 맛나게 무쳐 내고, 애호박 숭숭 썰어 넣고 된장 뚝배기 하나 끓여 손맛 하나로 차려 낸 어머니의 밥상. 그 밥상이 그리운 오늘! 피자 한 쪽과 햄버거, 컵라면……. 온갖 패스트푸드의 상념 속에서 우리는 식당가를 떠돌며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콩나물 국밥, 돈가스 등등을 두고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 떠오르는 ‘엄마 손’. 그리고 그 손으로 손수 마련해 주신 밥상.[/lea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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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손’은 ‘내 배는 똥배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우리 사회의 신화가 되어 가고 있다. ‘엄마손 칼국수, 엄마손 만두, 엄마손 김밥, 엄마손 폐백, 엄마손 추어탕, 엄마손 반찬, 엄마손 떡집, 엄마손 어린이집, 엄마손 산후 조리원’ 등등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엄마 손’을 필요로 한다. ‘엄마 손’은 문화의 한 패러다임이며, 믿음이고, 신앙이다. 그리고 ‘엄마 손’ 신화의 원형은 ‘집밥’이다. 황석영의 소설 《심청》에서는 ‘집밥’ 대신 ‘집엣밥’이 쓰이기도 한다.

 

내가 믿는 집밥의 효능을 믿어주는 건 그래도 피붙이밖에 없는 것 같다. 따로 사는 손자가 오늘 할머니한테 가서 저녁 먹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올 때가 가끔 있다. ≪박완서,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

나도 집밥이 그립다. …… 돼지 사태살 한 근을 끊어다가 볶고, 한 해 묵은 김장김치를 씻어 굵은 멸치를 듬뿍 넣은 된장에 푹 쪄내고, 김이 펄펄 올라오는 하얀 쌀밥 한 그릇 …… ≪정도상, 낙타2010

내가 허접한 음식 올려도 다들 집밥, 집밥 하면서 침을 흘리는데……. 엄마가 해주는 밥이 아니라도 자기가 자기 손으로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그게 집밥인데……. ≪황인숙,도둑괭이 공주2011

그 왜 느끼한 것만 먹다가 집엣밥 먹구 싶은 때가 있잖아. ≪황석영, 심청2003

 

‘집밥’은 단순히 '집에서 해 먹거나, 집에서 먹는' 밥이 아니다. 꼭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손끝에 묻어난 정성이 맛과 사랑, 그리고 믿음으로 승화된 밥이 '집밥'이다. 우리가 ‘집밥’을 그리워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집밥’에는 ‘집반찬’이 제격이다.

 

‘집반찬’은 캔이나 비닐 팩에 담겨 진열대에 전시된 반찬이 아니다. 규격화되고 형식화되지 않은 ‘집반찬’은 때론 맛이 들쭉날쭉하기도 하고, 집집이 그 맛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고유의 깊은 맛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집반찬’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 남편은 어찌나 外式외식을 많이 하는지 집에서의 食事식사는 손맛이 자근자근 밴 집반찬만을 찾는다. ≪경향신문, 1977. 4. 14.≫ 아침에는 죽, 점심에는 다시마 멸치 국물에 삶아낸 우동, 저녁은 집반찬과 밥으로만 끼니를 삼는 게 오랜 습관이 됐다. ≪경향신문, 1982. 10. 11.≫

 

‘집반찬’은 ‘집밥’이 그런 것처럼 단순히 ‘집에서 먹는’ 반찬이 아니다. ‘집반찬’이 집집이 고유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집간장’과 ‘집된장’ 때문이다. 장은 집집마다 담는 비법에 따라 고유한 맛을 내기 마련이고, 그 장맛을 기본으로 손맛을 더한 것이 ‘집반찬’이다.

 

집간장이란 이름이 말해 주듯 나 역시도 몇 년 전까지는 국간장을 사먹는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양귀자, 단절을 잇다2010 “양파 다지고예, 마늘 넣고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넣고 그래 만듭니더. 집간장 맛난 거로 넣고.” ≪최은숙, 열흘간2008 배추 대신 양배추, 집된장 대신 일본 미소, 고춧가루 대신 후춧가루, 그런 건 타향살이 기본 아냐? ≪권현숙, 마지막 수업2007

 

‘집밥’은 ‘집에서 손수 지은 밥’ 혹은 ‘집에서 손수 지은 밥과 반찬으로 차린 밥상’이며, ‘집반찬’은 ‘집에서 손수 지은 반찬’, ‘집간장’은 ‘집에서 손수 담근 간장’, ‘집된장’은 ‘집에서 손수 담근 된장’이다. 따라서 ‘밥, 반찬, 간장, 된장’ 앞에 결합된 ‘집’은 ‘주거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이때의 ‘집’은 명사 앞에 결합하여 ‘집에서 손수 만든’ 혹은 ‘집에서 손수 지은’, ‘집에서 손수 담근’의 뜻을 더하는 접사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집밥, 집반찬, 집간장, 집된장’ 등과 같은 말들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집밥, 집반찬, 집간장, 집된장’ 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참살이웰빙’의 열풍과 함께 규격화되고 형식화된 '식당밥'에 대한 반발과 ‘식재료’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식당밥’이 ‘집밥’보다 훨씬 이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집반찬’을 제외한 ‘집밥, 집간장, 집된장’ 등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지만, ‘식당밥’은 훨씬 이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 그 쓰임을 찾아볼 수 있다. ‘집’이 결합한 말들은 중국의 동포 사회나 북한 사회에서는 아직 그 쓰임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쩌면 그들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건호가 식당밥을 먹지 않은 것은 아내를 얻고 나서였다. ≪한문영, 소리의 유전1981 아무튼 가스관을 안장하고있는 이상 열흘 좌우면 가스가 통할 것인 즉 두달 남짓이 소식을 해온바하고는 아예 식당밥을 며칠간 사 먹으면서 가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였다. ≪김하, 아리랑중국 동포 작가,1985 주임의 입에서 존대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식당밥에 고깃국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보다 어렵다. ≪공선옥, 목숨1992 우리 집으로 가. 식당밥보다야 낫겠지. ≪구용기, 단풍 든 추억중국 동포 작가,1999 그렇게 안 한다면 저마다 직장에서 근무지에서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식당밥을 사먹거나 내내 시장기를 참아야 할 터였다. ≪한차현, 변신2010

 

‘집밥, 집반찬, 집간장, 집된장’과 ‘식당밥’은 아직 어떤 국어사전에도 실리지 않은 말들이다. 배달 음식과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현대 사회에서 ‘집밥, 집반찬, 집간장, 집된장’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적 패러다임은 슬로푸드이며, 사전이 그러한 문화적 패러다임을 반영해야 하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식당밥’이 산업화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라면, ‘집밥’은 현대인들의 위안이며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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