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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수와 짜장면

소설 속 새말 6 사라진 이름과 남아 있는 이름 된장국수와 짜장면   [lead-para]1970년대 초반 국수를 물리도록 먹어본 적이 있다. 국수 한 모동그랗게 묶어 놓은 국수 한 덩이와 라면 서너 개를 넣고 끓인 ‘제물국수’. 국물은 되직하고, 라면 스프 맛은 국수를 끓인 제물에 섞여 온데간데없다. 그나마 있는 집에서는 신 김치라도 넣어서 끓여 먹었다. 돌이켜 보건대 그 시절 서민들에게 국수는 도로 공사나 제방 공사 같은 공사판에서 부역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품삯과도 같은 것이었다.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남아나던 시절, 국수는 서민의 허기를 달래 주던 대표적인 먹거리였다.[/lea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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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수 국수를 삶아서 건진다. 고기四十g 돼지고기도 좋음는 너붓너붓하게 썰어서 남비에 볶는다. 당근七十g 정도은 가는 것을 반으로 갈라서 반달 모양으로 썰고 감자百g도 같은 크기로 썰어 고기와 같이 넣고 볶는다. 여기에 물을 반 컵쯤 넣고 끓여 채소가 잘 익으면 다시 물을 반 컵쯤 넣고 된장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유부도 조금 썰어 넣고 맛이 들도록 끓인다. 여기에 삶아 놓은 국수를 넣고 한소끔 끓이고 국수가 뜨거워지면 그릇에 담고 날파를 조금 썰어서 넣고 기호에 따라서는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도 좋다. 비교적 우리들의 입맛에 맞는다. 《동아일보, 1972. 5. 23.》

 

위의 기사는 미국의 식량 원조로 밀가루가 넘쳐 나던 시절, 1972년 5월 23일 자 동아일보 ‘금주今週의 식탁’이라는 기사에 실린 ‘된장국수’의 조리법이다. ‘된장국수’는 기사에 따르면, ‘부족되는 쌀의 절약과 보다 합리적인 영양 섭취를 위하여’ 분식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리법은 어쩐지 서민 생활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돼지고기도 좋음’이라는 표현을 보건대, 본문에 나오는 ‘고기 40g’은 아마도 소고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리법대로라면 ‘된장국수’는 일본식 라면과도 많이 닮아 있다.

 

그런데 같은 신문 1965년 4월 16일 자 기사에도 ‘된장국수’가 등장한다. ‘횡설수설’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에서 ‘요 며칠 래로 중국 음식中國飮食을 먹어야 되느냐 먹지 말아야 되느냐의 가부可否가 다시 화제話題에 올랐다’‘우리는 팔아 주는데 우리 사람에게선 사지 않는 그 배타심의 상혼! 구태여 보복을 하자는 게 아니라, 자익 옹호라는 견지에서 가급적이면 사 먹지 말아야 되겠다. 오늘에 화상華商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번영을 누리는 것도, 실상은 화교들의 그 끈덕진 민족적 단결력의 소산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한번 결심하고 단행해 볼 일’이라고 말하며 중국 음식 값이 갑자기 오른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렇듯 느닷없이 중국 음식의 값들이 뛴 것은, 고기값이 매 근 20원씩 오른 뒤에 생긴 현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다지 괴이쩍을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비록 쇠고기, 돼지고기 값이 올랐다 한들, ‘볶음국수’나 ‘된장국수’ 따위에 고기 분량을 얼마나 많이 넣기에, 그만한 값들을 대번들 올려도 좋으냐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 1965. 4. 16.》

 

분명 1972년 신문 기사에 나타난 ‘된장국수’는 우리가 개발한 음식이지만, 1965년 기사에 보이는 ‘된장국수’는 중국 음식이다. 이 신문 기사는 ‘볶음국수’와 ‘된장국수’는 중국 음식, ‘곰탕’과 ‘설렁탕’은 우리 음식으로 분류하고 그 가격도 큰 차이가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1965년 신문 기사에 나타나는 중국 음식 ‘된장국수’는 어떤 음식일까?

 

오늘은, 가치 청요리래두 먹기루 허구……, 순이는 탕수육허구 된장국수를 좋아허니까. 그러나 너무나 돈에 알뜰한 여자가 된장국수쯤은 말이 없어도, 탕수육만 해도 객적은 과용이라고, 이제까지 함부로 시킬 것을 허락지 않던 것이 생각나……. 《박태원, 천변 풍경》 인숙이는 쾌남이를 끌고 청요릿집에 가서 된장국수를 두둑히 먹여 가지고 나와서, 반나절을 걸려서 되도록이면 멀찌감치 떨어진 데에 셋방 하나를 얻어 놓고, 전세돈 오만 환을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당장 치렀다. 《염상섭, 의처증》  

1936년에 쓰인 박태원의 소설 《천변 풍경》과 1961년에 쓰인 염상섭의 소설 《의처증》에 나타나는 ‘된장국수’이다. ‘된장국수쯤은 말이 없어도, 탕수육만 해도 객적은 과용’이며, ‘청요릿집에 가서 된장국수를 두둑히 먹여 가지고 나와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두 소설에 ‘된장국수’는 다름 아닌 ‘짜장면’이다. 짜장면의 재료인 ‘춘장’이 ‘중국식 된장’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두 소설에서 보이는 ‘된장국수’가 ‘짜장면’이라는 사실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65년 이후 지금의 ‘짜장면’을 뜻하는 ‘된장국수’는 신문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후 웹이나 신문 기사에 나타나는 ‘된장국수’는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인 된장 국물에 국수를 만 음식’이다. 사실상 ‘짜장면’의 다른 이름이었던 ‘된장국수’는 1965년 이후 남한 사회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런데 우연히 북한의 한 호텔에서 ‘된장국수정식 명칭은 된장비빔국수’라는 이름을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된장국수’를 만드는 방식과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 모두 남한의 ‘짜장면’과 꼭 같았다. 다만, ‘춘장’ 대신에 ‘된장’을 쓰고 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말대사전》에 실린 ‘짜장’과 ‘짜장면’의 뜻풀이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조선말대사전》은 ‘짜장’과 ‘짜장면’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짜장 [명사]

고기, 홍당무우, 된장 같은 것을 기름에 볶아서 만든 장처럼 된 양념장.

짜장면 [명사]

짜장을 넣고 버무려 먹는 국수.

  북한의 짜장면  

북한의 ‘짜장면’은 남한의 ‘고기와 채소를 넣어 볶은 중국 된장에 비빈 국수’와는 다르다. 1980년대 이후 북한에서 간행된 소설에서 ‘짜장면’이 쓰인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 쓰인 ‘짜장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짜장면’과는 다르다. 조리하는 방식은 남한의 ‘짜장면’과 다르지 않지만, 주 소스가 ‘된장’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진이는 짜장면 한 그릇을 막돌이 앞으로 밀어 놓았다. 《강효순, 찔레꽃》 어지러운 식탁 우에 놓인 짜장면 그릇을 깨끗이 비워 치우고 사기 주전자에서 더운물 한 잔을 따라 양치질을 울렁울렁 한 다음 손수건으로 입술을 꼭꼭 눌러 닦더니 그린 듯이 앉아 있기만 하였다. 《415문학창작단, 두만강 지구》

 

결국 지금 ‘된장국수’는 남한에서 예전에 ‘짜장면’을 달리 부르던 말이었기도 하고, 북한식‘짜장면’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글_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새어휘부 부장.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학 박사. 전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호남문화정보시스템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논문으로는 <전이지대의 언어 변이 연구>, <전라방언의 중방언권 설정을 위한 인문지리학적 접근> 등이 있고, 저서로는 <언어와 대중매체>,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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