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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천 냥 빚을 갚을 말

  • 이미향(영남대학교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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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는 옛말이 있다. 말의 가치를 한껏 치켜세우는 표현이다. 그런 말 한마디를 두고 천 냥 빚도 갚을 정도라고 매긴다. 사극에서 흔히 듣던 ‘냥’이라 익숙히 아는 말 같지만, 사실 한 냥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 한 푼의 열 배가 한 돈이고, 한 돈의 열 배가 한 냥이다. 만약 국밥 한 그릇이 한 푼이라면, 한 냥으로는 국밥 백 그릇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천 냥이란 십만 푼으로, 오늘날 물가로 따지면 수천만 원에서 1억 가까이 된다. 그런 빚을 갚을 수 있는 말이라면 어떻게든 한번 해 볼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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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짚어 볼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남을 움직일 만큼 힘 있는 말이란 듣기 좋은 말이다. 비지 사러 온 사람에게 두부를 사게 하고, 큰 빚을 면제해 줄 정도로 마음을 움직이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곧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말하고 싶은 내용을 물은 한 조사가 있는데, 자기 신상에 관한 것, 자기 이해에 관한 것이 각각 1위,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뒤를 이어 타인에 대한 험담, 취미에 관한 것, 자기만 아는 것이 있었다. 자기만 아는 것이란 곧 비밀이 아닌가? “이거 비밀인데….”라고 하면 더욱 말하고 싶어진다고 하니 참 흥미로운 사실이다. 발 없는 말이 왜 천 리를 갔는지, 낮말과 밤말을 전한 새와 쥐는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이제 이해가 된다. 이처럼 말하고 싶은 내용들은 공통적으로 철저히 화자 중심이다.

 이와 달리, 듣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물은 조사에서는 전혀 다른 응답들이 나온다. 많이 나온 답은 자신의 행동에 필요한 정보,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 칭찬 등이다. 한 유명한 이야기로, 칭찬에 무너진 나폴레옹을 만나 보자. 장군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신에게 아부하는 것을 염려한 나폴레옹은 어느 날, 전장에서는 곧은 말만 하도록 엄중하게 일렀다. 그날 밤 한 장군이 나폴레옹을 찾아와 “아부를 싫어하는 지도자를 처음 봤는데, 그래서 더욱 존경한다.”라고 말한다. 그 장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원칙대로 하면 엄벌을 받아야 하지만, 나폴레옹은 오히려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듣고 싶은 말은 들을 사람이 필요한 정보이거나, 적어도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말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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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로서 하고 싶은 말과, 청자로서 듣고 싶은 말이 다르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중성이 엿보인다. 설령 그렇더라도 위의 내용이 맞는 것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보다는 듣는 사람을 고려한 말을 할 줄 아는 화자가 훌륭한 화자인 것은 분명하다. 듣기 좋은 말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말 자체보다 말이 쓰이는 상황이 말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그래서 남의 상황을 내 기분으로 말하는 것이나, 타인의 사정을 단정하거나 판단하는 말은 더욱 조심할 일이다.

 한국어 학습자가 배워 갈 말은 자신을 보여 주고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도구이다. 인사말로 시작하는 한국어 초급 단계에서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표현을 주로 배운다. ‘영화를 보고 싶어요’처럼 원하는 것을 말하고, ‘비가 와서 집에 있어요’처럼 이유를 말하고, ‘맛있네요’처럼 감탄하는 마음도 드러낸다. 그 밖에도 경험과 목적을 말하고, 요청하거나 부탁하는 등 주로 삶과 직결된 것을 초급에서 배운다. 이런 표현은 범세계적이고 보편적이어서 그런지, “이 말을 언제 써요?”처럼 말의 쓰임에 대한 질문이 별로 없다.

 그러다가 한국어 중급 단계에 이르면 사회적 상황 이모저모에서 쓰일 여러 표현들이 쏟아진다. 비교와 대조, 경고와 충고, 동의와 반대, 확인 등을 표현하는 말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그러기 마련이에요, 그런 법이에요’처럼 당위를 이르는 말, ‘늦기 일쑤예요, 무례하기 짝이 없어요, 실수하기 십상이에요’ 등의 단정적인 표현들이 있다. 흥미롭게도 학습자들은 이런 특별한 표현에 관심을 보이며 상황이 되면 한 번쯤은 꼭 쓰려 한다. 특별한 어감이 인상적이었을 테고, 한편으로 자신이 중급 이상임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말의 사전적 의미에 집중하면서 사용 상황을 살피지 않는 경우이다. ‘원래 그러기 마련이죠’처럼 단정 짓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이가 있을까? 단정과 판단에 대한 표현이 필요할지라도, 이런 표현들은 무턱대고 쓰면 문법상으로 잘 맞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간관계를 해친다. 또한, 외국어 간에는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어감이 다른 말들이 많다. 그런 배경으로 인해 학습자는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마치 볼록렌즈 앞에 선 누군가의 모습과 같은데, 오히려 그 말을 잘 쓰고 있는지 되돌아보지 않아 결국 오류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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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정확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말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학습자가 배워 갈 말 한 마디에 적절한 사용 상황과 인간관계를 담아 전한다. 한 사람이 한국어를 배워서 실제로 말할 때, 그 말은 적어도 화자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습자가 가치로운 말을 알고 적절하게 쓰도록 하는 것, 말의 힘을 믿는 한국어 선생님이라면 교실 문을 열기 전에 꼭 기억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