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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그리고 사람
  • 우리 말글에 대한 자긍심

  • 한글학회 권재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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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마침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국립국어원 소식지 독자 여러분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재일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부터 언어학을 전공했어요. 1981년부터 2018년까지 대구대학교, 건국대학교, 그리고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연구하고 교육했습니다. 2009년에는 국립국어원 원장을 맡았고,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글학회장을 맡아 왔습니다. 남북공동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장으로 활동한 바도 있고요. 현재는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직을 맡아 한글학회를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월을 돌아보니 46년 가까이 우리말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한길을 오랫동안 걸어왔군요.

《쉼표, 마침표.》

이사장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살펴보노라면 특히 한글학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글학회가 우리 국어 발전에 끼친 영향이 크지 않습니까?

권재일

 한글학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단체예요. 올해로 창립 114주년이 되었죠. 한글학회의 시작은 19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시경 선생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서울 봉원사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한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 가며 성장해 왔습니다.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쳤는데 이 시기에 우리 국어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일을 하게 되죠.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말 큰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사전 편찬 작업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뒤따르거든요. 먼저 표기법을 통일해야 했어요. 이에 따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193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 맞춤법의 뿌리가 그 시절 조선어학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죠. 또한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표준말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1936년에 표준말 사정안을 만들고 사전 편찬을 시작하여 1957년에 완간합니다. 그러는 동안 광복을 맞이하고 1949년에 학회 이름을 ‘한글학회’로 고쳐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쉼표, 마침표.》

한글학회의 현주소는 어떠한지요?

권재일

 현재 한글학회는 민간학술단체로서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첫째는 국어를 연구하는 일이고 둘째는 연구한 것을 토대로 국민의 언어생활을 편하고 품격 있게 하는 일입니다. 먼저 연구 활동으로는 1년에 크게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열면서 학술지 ‘한글’을 1년에 네 번 발간하고 있어요. 또한 월간지 ‘한글 새소식’을 발간해서 국민을 위한 계몽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죠.

《쉼표, 마침표.》

‘한글’과 ‘한글 새소식’과 관련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권재일

 ‘한글’은 1927년에 처음 발간되었어요. 그때는 순수 학술지라기보다는 계몽적인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었는데요. 그것을 한글 동인지라고 말해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은 1932년에 창간이 되어서 올해 90주년을 맞이했죠.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지라고 하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한글’은 다른 학술지와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그 한 특징은 우리 말글에 대한 연구 내용을 싣는 논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응용해서 실제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을 어떻게 향상할 것인가 하는 내용의 논문도 함께 싣는다는 거죠. 또 하나의 특징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도해 나가는 적극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언어학은 컴퓨터 언어학을 활용한 인공지능 언어학이 큰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관련 논문들이 꽤 많이 실리고 있죠. 몇 년 전부터 강하게 불고 있는 한국어 열풍을 반영하여 한국어 교육학에 대한 논문들도 널리 찾아서 싣고 있고요. 이처럼 ‘한글’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학술지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고 때로는 앞서가는 학술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글학회는 단순히 학술단체로서 기능하는 것을 넘어서서 국민을 위한 언어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따라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 잡지를 창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한글 새소식’입니다. ‘한글 새소식’은 어떻게 하면 국민이 우리 말글을 쉽고 정확하게, 그리고 품격 있게 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매달 7천 부 정도를 발간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종이판과 온라인판 발행을 병행하려고 해요. 우리 말글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이면서 우리 말글에 대하는 올바른 정신을 널리 전파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쉼표, 마침표.》

한글날을 맞아 훈민정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계가 인정하는 소중한 기록 유산이 아닙니까?

권재일

 맞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말씀드리자면 한글 창제 원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죠. 창제 시기와 창제 원리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문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한글뿐입니다. 해례본 내용을 살펴보면 한글이 그야말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기본 글자를 만들고 거기서 확장시켜 나갔다고 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서 간단히 자음의 원리를 살펴볼까요? 발음 기관을 반영하여 ‘ㄱ, ㄴ, ㅁ, ㅅ, ㅇ’ 5개의 기본 글자를 만들고 거기에서 획을 더하는 원리를 적용하여 ‘ㅋ, ㄷ, ㅌ, ㅍ, ㅈ, ㅊ, ㅎ’ 등의 글자를 만들어냈죠. 창제 원리를 살펴보면 누구나 한목소리로 ‘과학적이다, 독창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한글의 우수성을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휴대전화를 꼽을 수 있죠. 한글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나요? 자음 기본 글자 5개와 모음 기본 글자 3개를 넣고 획을 더하는 기능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확장해 나갈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문자를 입력하는 일이 이 세상의 어떤 문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간편하죠. 정보화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문자라고나 할까요.

《쉼표, 마침표.》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도 어렵지 않게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봅니다. 그만큼 한글이 배우기 쉬운 문자라는 것이겠지요.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재일

 ‘백성들이 쓰고 읽는 데 막힘이 없기 위해서는 문자가 쉬워야 한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사실 굉장한 일이에요. 문자 자체가 쉽고 편리해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백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감히 할 수 없는 발상 아닌가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정신은 한마디로 말해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민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문자를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지요. 요즘 말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글은 글자의 민주주의이며 인권이라고요. 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을 차별할 위험이 거의 사라졌다는 게 한글이 가져다준 혜택입니다. 지식과 정보의 소통, 그리고 보통교육에서 문자의 장벽이 낮았기에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고요.
 하지만 한글 창제를 말하면서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언급하면 봉건제도의 군주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글 창제뿐만 아니라 다른 정책과 업적들 또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펼쳐 나갈 수 없는 것들이에요. 특히 관청의 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늘려 준 일에서 세종대왕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죠. 여성 관노비가 아기를 낳으면 당시에는 7일의 휴가를 주었는데, 세종대왕은 기존의 7일 휴가에 100일을 더 주게 했어요. 나중에는 관노비가 아이를 낳을 산달에도 휴가를 줘서 모두 130일의 출산 휴가를 주었습니다. 노비의 남편에게도 30일 휴가를 주어서 산모를 돌보게 하고요. 그 마음 씀씀이가 지금의 복지 제도 수준을 넘어섭니다.

《쉼표, 마침표.》

훈민정음의 새 이름, ‘한글’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합니다.

권재일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1894년까지는 훈민정음이 공식 이름이었어요. 그러다가 1894년에 고종임금이 칙령을 내립니다. 훈민정음을 나라의 글자로 선포하면서 앞으로 모든 국서를 국문으로 써야 한다는 내용이죠. 그 이후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였는데 ‘한’이라고 하는 말은 우리 토박이말로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 있어요. 여기에서 비롯되어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주시경 선생이 회장을 맡아 1913년에 만든 ‘한글모’의 이름에서 처음 사용되었고요. 여기서 ‘모’는 ‘모임’의 앞 글자입니다. 그 뒤 1927년에 나온 조선어연구회 동인지 ‘한글’을 통해 ‘한글’이 훈민정음의 새 이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죠. 한글이 일반 국민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된 시기는 1928년입니다. 이보다 앞선 1926년에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이하여 ‘가갸날’이 만들어졌는데, 2년 후에 ‘한글날’로 변경되었어요. 그 이후 1932년에 학술지 ‘한글’이 발간되고 1933년에는 한글맞춤법이 만들어지면서 한글이 우리 글자의 이름으로 완전히 굳어졌습니다.

《쉼표, 마침표.》

한글날을 전후로 한글학회는 어떠한 행사를 계획하고 진행하셨는지요?

권재일

 해마다 진행하는 일들이 있지만 올해는 특별히 조선어학회 수난 80돌을 맞아서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를 열었어요. 온라인으로 생중계도 했고요. 혹시 조선어학회 수난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고 있었는데, 일제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어요. 사전 편찬을 탄압하기 위하여 결국 회원 33명을 붙잡아 고문을 가했죠. 회원 중에서 이윤재 선생과 한징 선생은 결국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조선어학회 수난 사건이라고 합니다. 1942년 10월 1일에 일어났고요. 일제 치하에서 선열들이 우리 말글을 지키려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사건인데 그야말로 총칼을 안 들었지 치열한 독립운동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올해로 80년째 되었으니 그냥 쉽게 지나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지난 9월 30일에는 선열들의 유족들과 함께 광화문에 있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탑에서 꽃 바치기 행사를 했습니다. 또 앞서 언급했다시피 10월 7일에는 조선어학회 수난 사건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고요. 10월 말쯤에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남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서 온라인 전시회를 하려고 합니다. 10월 27일에는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11명의 조선어학회 선열들께 참배할 계획입니다. 올해는 이처럼 조선어학회 수난 사건 80돌을 기념하여 우리 말글을 지키고자 한 선열들의 뜻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려고 해요.

《쉼표, 마침표.》

한글학회의 여러 사업 중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권재일

 앞서 월간지 ‘한글 새소식’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인데 거기에 시민이 참여하는 꼭지가 있어요. 우리 말글 바른 생활에 대한 퀴즈가 그것이죠. 여기에 응모하시면 추첨을 통해서 소정의 상품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쓰기 위한 교양 강좌가 있는데요. 1년에 두 차례씩, 그러니까 봄에 8주간, 그리고 가을에 8주간 무료로 진행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중단했죠. 내년 봄부터 재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활동은 언제나 꼭 필요하거든요.

《쉼표, 마침표.》

화제를 좀 돌려서 국어운동에 대해서 여쭙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국어운동이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운동이라고 여기고, 우리말과 한글은 우리 것이기에 소중하다는 믿음 위에서 펼쳐갈 것이라고 넘겨짚는데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국어운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권재일

 국어운동이란 국민이 우리 말글을 쉽게, 정확하게, 그리고 품격 있게 사용하도록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에요. 무엇보다도 우리 말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일이 중요하죠. 아까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이 전 세계에 드러나고 있잖아요? 무조건 우리 것이니까, 우리 말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친다면 국수주의에 불과하죠. 우리조차도 잊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말글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 그러니까 일반 시민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일이 국어운동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저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 볼게요. 모교에 국어운동 학생회라고 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요즘 말하는 동아리였죠. 단체 회장을 하면서 한번은 제과 업체를 찾아가 국어운동 이야기를 했어요. 과자에 영어 이름을 붙이지 말고 이왕이면 쉬운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홍보 담당자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참 좋은 말씀인데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영어로 된 상품 이름을 좋아한다, 우리말로 이름 지으면 어쩐지 촌스럽다고 안 사 먹는다, 만약 소비자들이 우리말 상품 이름을 선호한다면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말 이름을 쓴다.”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뜨끔하더라고요. 다름 아닌 국민이 우리 말글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국어운동에 앞장서야 하는 주체를 손꼽는다면, 그건 한글학회도 국립국어원도 아니라 바로 정부 부처와 언론 기관이에요. 코로나가 발병하면서 어려운 방역 용어들이 참 많이 쏟아져 나왔죠? 팬데믹, 드라이브 스루, 코호트 등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빈번했고요. ‘추가접종’이라 하면 될 것을 끝까지 정부는 ‘부스터 샷’이라 했어요. 정부 부처가 공식 문서에서 외래어를 사용하니까 언론 기관도 그대로 따라서 사용했어요.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외국어에 취약한 노인들을 중심으로 정보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생겨났죠. 우리 언어생활이 어려우면 삶의 질도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심각할 경우 생명과도 직결되고요. 우리 언어생활이 쉽고, 정확해야 하는 이유지요. 또한 국어운동을 말할 때 언어의 품격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흔히 요즘 청소년은 말을 거칠게 한다고 하잖아요? 사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서로 쓰는 말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지요. 품격 있는 언어생활이란 미사여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언어생활을 장려하는 것이 국어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쉼표, 마침표.》

국립국어원장을 맡으신 바 있고, 현재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만큼 국어 정책과 관련해 아쉬움을 느끼시는 점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권재일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한글학회나 국립국어원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국어 정책 방안을 제시하는 게 참 쉽지 않아요. 여론 조사를 하고 학자들의 의견을 모으고 시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데도 기대에 못 미치는 현상을 보면 확실히 묘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새롭게 만들어진 새말이 국민 일상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모습도 발견되고 있거든요. ‘누리집, 누리꾼’이나 ‘안전문’ 같은 단어들이 대표적이에요. 이러한 사례를 꾸준히 확대해 나가야죠. 무엇보다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공감을 얻는 국어 정책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쉼표, 마침표.》

한글학회와 이사장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이 궁금합니다.

권재일

 아시다시피 저는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어요. 한글학회는 학술 활동과 국민 계몽 활동을 펼치고 있고, 재단법인 한글학회는 한글학회가 성공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과 행정 지원을 하는 것이 주된 임무입니다. 따라서 제게 주어진 과제는 재정을 확보해서 한글학회를 도와주는 거죠. 또한 조선어학회 선열들이 남긴 문헌들을 정리해서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사업도 중요하고요. 국민의 언어생활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사업도 매우 중요한 과제겠지요. 앞으로 한글학회가 펼치는 여러 일에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웃음)

글/사진: 강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