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그리고 사람
우리말, 그리고 사람

우리말, 그리고 사람 국민의 국어능력을 높이겠습니다.
국립국어원 장소원 원장

문장을 넘어서 텍스트로 한국어 연구의 범위를 넓히다

<<쉼표, 마침표.>>

작년 12월, ‘우리말 그리고 사람’은 2020 세계한국어대회 공동조직위원장님으로서 원장님을 뵈었습니다. 이번에는 국립국어원장으로서 뵙게 되었습니다. 독자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장소원

 안녕하세요. 장소원입니다. 앞으로 3년간 국립국어원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국립국어원장으로서 독자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쉼표, 마침표.>>

원장님께서는 국어학계에서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거두시며 활발하게 연구를 이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두고 연구해 오신 분야는 무엇인지요?

장소원

 굳이 분야를 구분해서 말하자면 텍스트 언어학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기존의 문법론은 문장 단위에 한정해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 텍스트 언어학은 문장보다 더 큰 단위인 ‘텍스트’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실제로 다양한 문장들의 결합으로 실현되는데 이런 문장들이 모여서 하나의 덩어리, 즉 글을 이룹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목적으로 말을 하느냐에 따라 뉴스 텍스트, 방송 언어 텍스트, 광고 텍스트, 법률 텍스트 등 매우 다양한 텍스트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텍스트마다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구성되는지,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쉼표, 마침표.>>

서울대학교는 국어국문학으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 제5대학에서는 언어학으로 박사 과정을 마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소원

 지금은 문법책과 국어학 논문에서 문어와 구어를 구별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어학에서는 문어와 구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았고 각각의 특징이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문어를 대상으로 한 문법책이 전부였고, 가끔씩 문어에서는 쓰이지 않는 어미나 조사 등의 문법현상을 에외로 지적하는 정도였지요. 제 석사 논문이 「문법 기술에 있어서의 문어체 연구」인데 문어체에서 쓰이는 종결 어미가 구어체의 어미들과 어떻게 다른지, 나름의 체계를 세워 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종결 어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문어에서는 “나는 커피와 과자를 먹는다.”라고 하는데, 구어에서는 대개 “나는 커피랑 과자를 먹는다.” 또는 “나는 커피하고 과자를 먹는다.”라고 합니다. 조사 사용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이죠. 텍스트 차원으로 넘어가면 그 차이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지겠지요. 이런 문어와 구어의 차이를 더 깊이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서점에서 한 프랑스 언어학자가 쓴 책을 읽게 됐습니다. 그 책을 보니까 프랑스어는 구어와 문어 차이가 크고, 그래서 이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한국어 열풍이 유행으로 그치지 않도록

<<쉼표, 마침표.>>

30여 년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재직하시면서 다양한 저서를 출간하셨습니다.

장소원

 1992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임용되고는 근 10년간 대학 교재 집필에 열중했습니다. 10권이 넘는 교재들을 선배, 동료 교수님과 함께 집필했는데 지금의 방송대 교육과정의 틀을 잡는 데 일조를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2002년에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제가 그동안 연구해 온 텍스트 언어학을 실제 언어생활에 적용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여러 권의 책을 내었습니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론>>, <<방송 글쓰기>>, <<우리 시대의 문체>>,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 같은 책을 꼽을 수 있겠네요. 문체부와 국립국어원과도 여러 연구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이런 말실수 저런 글실수>>, <<보도 가치를 높이는 TV 뉴스 문장 쓰기>>, <<YTN 뉴스로 배우는 시사 한국어>> 등이 그 결과물입니다.

<<쉼표, 마침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생소한 <<폴란드인을 위한 한국>>라는 책도 집필하셨던데, 어떤 계기로 쓰시게 된 건가요?

장소원

 2010년쯤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해외 한국학 진흥 사업으로 한국학과가 신설되는 외국 대학의 교재를 만들어 주는 연구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는데 때마침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폴란드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러 온 제자가 있어 함께 연구하면서 <<폴란드인을 위한 한국어>>라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2002년에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센터 소장으로 부임을 했는데, 그때 한국어센터의 선생님들이 앞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많이 늘어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은/는’과 ‘이/가’를 알아서 척척 구분해서 쓰지만 한국어와 관련한 언어 직관이 없는 외국인은 그렇지 않거든요. 한국어를 모국어로 국어학 연구를 하는 것과 외국인에게 가르치기 위해 한국어 연구를 하는 것이 달라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문법론을 새로운 각도에서 공부하게 됐고, 국어학 연구를 좀 더 치밀하게 접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쉼표, 마침표.>>

요즘 정말 한국어의 인기가 높은데요. 원장님께서 보시기에 한국어의 위상은 어떠한가요?

장소원

 제가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지금 한국어의 인기나 위상은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눈여겨보고 있는 지점은 한류와는 관계없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년 전 스페인의 한 대학 수업에 초청을 받아서 한류 콘텐츠로 배우는 한국어 동영상을 튼 적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왜 노래로 한국어를 배워야 하냐고 물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한류 열풍이 강하니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한국 대중가요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서 한국 문학이나 한국어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외국인도 꽤 많이 늘어났고, 이런 변화야말로 진정한 위상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쉼표, 마침표.>>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어가 세계 언어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국립국어원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장소원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국어에 관한 세계의 관심이 한때 열풍으로 그치지 않게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체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양질의 교육 과정과 교재를 개발하고 있으며 한국어 학습을 위한 웹 사전 운영, 한국어 교원 자격 심사와 교원 연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역이나 학습 목적에 상관없이 범용 교재 하나로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지금은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어 교재를 맞춤형으로 다양하게 개발해서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목적이나 학습 수준에 맞춰 한국어 교재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교수학습샘터’에 들어오시면 그동안 국립국어원에서 개발한 다양한 교육 자료를 만나 볼 수 있고, 또 연구자나 교사들끼리 정보도 나눌 수 있습니다. 현지 대학에서 한국어학이나 한국 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현지인 한국어 교원이 많아짐에 따라 국립국어원은 현지 한국어 교원이 교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추는 인증 제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 카자흐스탄 알마티과학기술협의회 한글학교에서 수업 중인 예비 교원

소통하는 언어, 평등한 언어, 경쟁력을 갖춘 언어의 미래

<<쉼표, 마침표.>>

원장님께서는 방송언어특별위원회에서 위원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최근 각종 매체들에서 신조어나 어려운 외래어들을 그대로 노출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구성원 간 소통을 저해하고 있는데요.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장소원

 언어는 계속 변화합니다. 언어가 고정된 모습으로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죠. 세상이 바빠지고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신조어가 더 자주, 더 많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경제적으로 말을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신조어나 줄임말이 넘쳐나면서 세대 간 소통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원인을 젊은 세대에게만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기성세대도 신조어나 줄임말을 많이 써 왔고, 어려운 외래어나 한자어도 젊은 세대 못지않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정보 통신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국제적인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신조어나 외래어가 급속히 번지다 보니 지금의 언어 현상이 눈에 띄는 것은 맞습니다만,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반성하면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뉴스에서도 새로운 말이 나오는데 한 번 정도 그 의미를 풀어 설명하고 나면 계속 줄인 말, 외국말을 사용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젊은 세대, 기성세대 모두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언어 정책적으로는 새로 유입되는 외래어를 발 빠르게 추적해서 되도록 쉬운 우리말 용어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고, 신조어나 줄임말은 써도 되는 자리와 쓰면 안 되는 자리를 구분하는 등 언어 교육이나 인식 개선 사업을 통해 국민이 자연스럽게 옥석을 가릴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공의 영역에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차별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최근 2년간 우리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용어만 보더라도 ‘코호트 격리, 부스터숏, 코로나 블루, 팬데믹, 트래블 버블’ 등등 국민 다수가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와 표현들이 마구 사용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무엇보다 쉽고 정확하게 정보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쉬운 말 쓰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쉼표, 마침표.>>

국립국어원 누리집 인사말에서 “장애, 가난, 이민 등의 이유로 한국어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를 위해 국립국어원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장소원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육과 장애인을 위한 언어 소통 지원 사업을 통해 누구에게나 평등한 언어로 다가가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취업, 결혼 등 한국 사회에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면서 제1언어는 외국어인데 필요에 따라 생애 중간에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언어 지원을 꾸준하게 해야 하는 건 국가 기관으로서 국립국어원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또 국립국어원은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의 언어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특수언어진흥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수어 관련 사업으로는 자연스러운 한국 수어를 수집하기 위한 ‘수어 말뭉치 구축’, 한국수어를 한국어로 풀이하는 ‘한국수어-한국어 사전 편찬’, 한국수어 교원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관리하기 위한 ‘한국수어 교원자격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농인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공공수어 통역 지원’ 등의 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관련 정례 발표 때 실시간으로 수어 통역을 제공함으로써 농인의 알 권리와 언어권 보장에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점자 규정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한글 점자뿐만 아니라 수학·과학·컴퓨터·음악 점자 등에 대한 규정도 보완해 시각 장애인이 일상생활과 학습 공간에서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점자 사용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입니다.

▲ 사진 출처: 연합뉴스

<<쉼표, 마침표.>>

국립국어원은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핵심인 인공지능과 자연어 처리 기술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 말뭉치 구축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언어 정보화와 말뭉치 사업 방향에 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소원

 국립국어원은 언어 처리 기술의 씨앗이 되는 대규모 국어 말뭉치(빅데이터)를 2018년부터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있는데, 올해에도 변화하는 언어를 관찰할 수 있고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한국어 기본 말뭉치와 다양한 심층 분석 말뭉치를 구축하여, 산업계 및 학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모두의 말뭉치’라는 사이트에 그동안 구축해 놓은 말뭉치들을 일반에 제공하고 있으니 많은 분들이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제 임기 중에 <표준국어대사전>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계획인데, 여기에도 말뭉치는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표제어, 예문, 뜻갈래, 관련어 등등 사전에 실리는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하려면 거대 언어 자료인 말뭉치가 꼭 필요하지요.

<<쉼표, 마침표.>>

앞으로 국립국어원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원장님께서는 국립국어원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소원

 우리 국민의 국어 능력을 키우는 일에 힘을 쏟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국어 능력 수준을 조사해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는 다른 나라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30대가 되면 평균 수준에 머무르다가, 50대~60대가 되면 평균 이하로 떨어집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우리 사회가 더욱 발전하고 품격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국립국어원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쉼표, 마침표.> 독자 여러분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또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사업들을 대외에 좀 더 널리 알릴 예정입니다. 2020 세계한국어대회의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주최 기관인 국립국어원과 손발을 맞춰 보고, 이 외에도 다양한 국어 관련 연구를 국립국어원과 진행하며 국립국어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국립국어원장이 되어 내부의 연구 결과와 업무 보고를 받아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전 편찬, 국어 교재 개발, 교원 양성 등 국민의 언어생활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업과 어문규범 관리, 맞춤법 정비 등 편리한 국어 생활을 위한 사업, 말뭉치 구축 등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해 언어 자원을 구축하는 사업 등 국립국어원이 하는 일을 널리 알려서, 국립국어원이 국민의 언어생활을 지원하고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기관임을 누구나 인지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글: 고승희
사진: 김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