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그리고 사람
우리말, 그리고 사람

우리말, 그리고 사람 언론 언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서울신문 이경우 어문기자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신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로서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다. 우리가 신문 언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안에 쓰인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은 때론 우리 일상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말, 언론 언어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어문기자의 역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몰랐던 어문기자의 세계

<<쉼표, 마침표.>>

처음 ‘어문기자’로 일을 시작하신 건 언제인가요?

이경우

 대학 졸업 후 지방 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교열부로 옮기게 됐고,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어문기자로 자리를 잡게 됐어요. 그때 들어간 신문사가 중앙일보였는데 이후 국민일보를 거쳐 1998년 서울신문으로 오게 됐습니다. 중간에 다시 취재기자로 일할 기회도 있었는데, 이미 어문기자로 경력을 꽤 쌓은 뒤였고 지금껏 해 오던 일을 더 열심히 잘 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쭉 어문부에 남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네요.(웃음)

<<쉼표, 마침표.>>

‘어문기자’를 소개해 주세요.

이경우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취재기자, 사진기자, 편집기자 등을 쉽게 떠올리는데, 어문기자도 그들 중 한 명입니다. 기자가 취재해서 기사를 쓰면 편집장이 1차 확인을 거친 뒤 어문기자에게 전달합니다. 그럼 어문기자는 여러 기준에 맞춰 문장을 다듬고, 낱말이나 표현 등을 정리하죠. 어문 규정이나 문법에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고 불필요한 번역 투나 외국어를 정돈하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가 쓰였는지도 살피고요. 어문기자는 신문 언어를 수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 즉 언어 편집자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언론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 사회의 언어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언어저널리즘’이란 표현을 썼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언어와 관련된 정보와 소식을 언론 매체가 보도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어문기자들이 이런 활동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더 적극적이면 좋겠습니다.

<<쉼표, 마침표.>>

그렇다면 어문기자의 하루가 궁금해지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이경우

 서울신문사 어문부에는 기자가 모두 네 명이 있습니다. 기사 작성과 편집은 모두 신문사 자체 시스템 내에서 진행되는데, 우선 기자가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초고를 작성해서 넘기면 각 부서의 팀장들이 원고를 1차적으로 확인하고 저희 어문부로 넘깁니다. 시스템에 기사가 쭉 올라오면 각자 할당받은 기사들을 확인하고 편집부로 전달합니다. 다음 날 새벽에 배포되는 신문은 전날 저녁부터 밤까지 3판으로 나눠 찍는데, 야근하는 날은 보통 밤 11시 넘어서 일이 끝납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마감 시간에 쫓겨 일하다 보니 오전부터 저녁까지는 계속 기사를 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예전에는 토요일까지 신문이 나왔기 때문에 토요일 하루만 쉬었지만, 지금은 토요일 자 신문 발행을 하지 않아 금요일, 토요일은 쉬고 있어요. 하지만 일요일은 일해야 해요(웃음). 월요일 자 신문이 나와야 하니까요.

<<쉼표, 마침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한국어문기자협회장을 맡으셨고, 서울신문 어문부장을 지내셨습니다. 현재는 미디어언어연구소장을 맡고 계시고요. 이력을 보면 언론 언어를 향한 열정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이경우

 어문기자의 역할이 단순히 ‘교열장이’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문기자들이 일차원적인 교열 업무에만 치중했다면 입지는 지금보다 훨씬 좁아졌을 거예요.
 제가 한국어문기자협회장을 맡았을 때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였던 협회 명칭을 지금처럼 바꿨고, 그때부터 ‘교열기자’가 아니라 자연스레 ‘어문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영역을 확장해서 우리 사회의 언어 관련 현상, 사건,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바뀐 상황에 맞는 이름이기도 했고요. 어문기자들의 큰 주제는 ‘언어’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의 가치는 단순히 사실이냐 아니냐를 넘어 그 안에서 다루는 언어에서도 온다고 봅니다. 따라서 언론 언어라는 틀에서 문장과 표현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한데 일부에서는 취재원의 언어를 그대로 옮기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업의 언어인 ‘대형할인마트’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공정하지 않고 주체적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언론 언어가 되려면 ‘할인’이 빠진 ‘대형마트’라고 써야 합니다. 언론 언어는 보도자료의 언어여서도, 정치인의 언어여서도, 기업의 언어여서도, 국어사전의 언어여서도 안 되거든요. 언론은 언론의 언어로 말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확하면서도 쉽고 치우치지 않은 언어로요.

<<쉼표, 마침표.>>

그렇다면 다른 언론 언어와 구별되는 신문 언어만의 특징도 있겠죠?

이경우

 다른 매체 언어와의 차이점이라면 아무래도 인명과 지명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겠죠. 뉴스는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거나 중요한 인물들의 소식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명칭을 정확히 쓰는 데 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명칭 하나를 실수하면 기사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거든요. 또 문체는 상대적으로 구어체에 가깝습니다. ‘-하였다’를 ‘-했다’, ‘-되었다’를 ‘-됐다’로 축약해서 쓰는 식이죠. 문장의 길이도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짧고 간결하게 작성하는 편이고요. 교과서처럼 반드시 규범적인 언어를 고집할 수도 없죠. 정보를 전하고 있는 시점에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언어’를 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신조어도 많고, 외래어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으로 써 오던 말들을 버린 것은 아니어서 옛말과 새로운 말, 각계각층의 말들이 녹아 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정이 가장 큰 화두잖아요. 차별하는 말이나 비하하는 말, 비객관적인 표현을 최대한 걸러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같은 표현은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썼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죠. 비유라고 하지만 장애를 가진 분들을 차별하는 표현이 되기 때문이죠. 신문 언어는 이처럼 현재의 문화와 감수성, 여러 사회적 잣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언론 언어

<<쉼표, 마침표.>>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줄임말이나 신조어 등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용할 때도 있습니다. 신문에서는 이런 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이경우

 읽는 사람에게 정보와 사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쉽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신조어나 줄임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있죠. 하지만 이런 말들을 무분별하게 쓸 수는 없어요. 신문 언어에 적합하지 않은 저급한 단어들은 걸러냅니다. 간혹 취재기자가 기사 쓰다가 물어볼 때도 있어요. “이런 단어를 쓰고 싶은데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어문기자가 맥락이나 민감도 등을 따져서 판단해 줘야 해요. 특히 기사 제목이 다소 자극적인 경우에는 편집기자와 언어 사용에 대해 수시로 소통해야 합니다. 반대로 단어 자체는 저급하지만 맥락에 따라서 쓰는 경우도 있어요. 그 맥락 속에 들어오면 오히려 소통이 잘 되고 저급하지 않게 읽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굳이 기존의 잣대를 고집할 필요도, 또는 지나치게 현실의 잣대만 적용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늘 적절성을 따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쉼표, 마침표.>>

어문 기자의 역할이 인공 지능 시대에 특히 빛을 발하겠습니다.

이경우

 맞습니다. 정확한 어문규범을 기반으로 한 한국어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교열은 많은 부분 기계로 대체 가능할 거예요. 특히 신문은 정확성만큼이나 신속성이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법적 오류를 잡아내는 기계가 유용할 때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을 완벽히 대체할지는 의문이에요. 예를 들어 죽음에 관한 서술어는 정말 다양합니다. ‘죽다’, ‘사망하다’, ‘별세하다’, ‘잠들다’, ‘돌아가다’, ‘영면하다’, ‘작고하다’, ‘목숨을 거두다’ 등 많습니다. 이 가운데 기사에 가장 적확하게 맞는 표현을 골라야 해요. 앞뒤 맥락과 전달하려는 정보, 각 표현의 어감 차이까지 전부 고려해서 선택해야 하죠. 이런 미세한 언어적 감도는 당분간 사람을 대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현재의 기계적인 부분을 인공 지능이 대체한다고 했을 때 더 적절하고 섬세하게 언어를 살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시대와 상황에 맞는 언론 언어의 기준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일도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문기자의 또 다른 영역인 우리 사회의 언어 문제에 관한 기사를 적극 발굴하는 길이 더 열릴 수도 있고요. 인공 지능 시대를 맞아 어문기자가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고민하고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일부에서 자칫 잘못 판단해 인공 지능이 다 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거든요.

<<쉼표, 마침표.>>

말씀을 듣자니 신문 언어는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다변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신문 언어에서도 표준어는 존중해야 하겠죠?

이경우

 인터넷 뉴스나 영상에 달리는 댓글들, 또는 특정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말들은 쓰임도 의미도 제각각이라 그 공간 밖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죠. 심한 경우 오해를 낳고 싸움이 나기도 하며 큰 논쟁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언론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매체입니다. 공적인 매체이기도 합니다.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겠죠. 그래야 통일성도 있고 더 널리 소통하는 데도 유리하니까요. 다만 특정 정보를 전달하는 데 표준어가 비효율적일 때만 예외적으로 비표준어를 사용할 수 있겠지요.

<<쉼표, 마침표.>>

기존의 작업 방식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어문기자가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경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책임감이 생깁니다. 기사에 교열 본 사람의 이름이 실리는 것은 아니지만요. 언어를 통해 소통되도록 하는 것이 늘 어려운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국어사전을 매일 펼쳐 보게 됩니다.(웃음) 예전에는 종이로 된 사전을 봤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손쉽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할 수 있어서 훨씬 편하죠. 또 필요하면 관련 문서나 글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특정 개념은 글만 읽어서는 바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유튜브도 자주 봅니다. 설명과 함께 그림이나 행동을 볼 수 있어서 문자보다 쉽게 전달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일하지 않을 때도 여러 분야의 기사나 자료를 수시로 읽는 일이 필요하죠. 언어 표현을 꼼꼼히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쉼표, 마침표.>>

어문기자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인가요?

이경우

 읽기 싫을 때도 우리는 끊임없이 읽어야 합니다. 새로운 소식을 온종일 접한다고 할 수 있죠. 이건 소소한 재미일 수 있겠네요. 기사를 읽고 교열을 보면서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표현으로 다듬은 말이 널리 통용될 때가 있어요. 이것도 작은 기쁨이죠.(웃음) 신문 언어가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잖아요. 언어가 달라지면 사회도 일정 부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도 영향을 주고요. 그런 측면에서 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 그 자체로 뿌듯함을 느껴요. 제가 연재하는 국어 기사인 <이경우의 언파만파>에 공감한다는 독자의 적극적인 반응이 올 때도 기쁩니다.

글: 김은영
사진: 김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