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로 함께하기

우리말,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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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의 알 권리와 언어권 보장하는
공공수어 통역 시대 개막
김용환 공공수어 통역 품질점검 위원장
고경희·권동호 수어통역사의 대담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으로 한국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위상을 가진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가 되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12월부터 농인의 정부 정책 정보 접근성 향상을 위해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라 대국민 담화나 정부 정책, 재난 상황 발표 현장에 수어통역사를 배정해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 19 관련 정례 발표에 실시간으로 수어 통역을 제공함으로써 농인의 알 권리와 언어권을 보장함은 물론 수어의 위상과 인식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본격적으로 공공수어 통역이 시작된 지금, 공공수어 통역은 제대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을까? 농인 대표로 공공수어 통역 품질관리를 맡고 있는 김용환 공공수어 통역 품질관리위원회 위원장과 고경희, 권동호 수어통역사를 만나 5개월여가 지난 공공수어 통역 서비스를 점검해 봤다. 진행은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이대성 학예연구관이 맡았다.

공공수어 통역은 농인의 자부심

이대성 학예연구관
(이하 이 연구관)

이전에는 화면 아래 작은 동그라미 안에 수어통역사가 있었는데, 공공수어 통역 서비스에서는 정책 발표자와 함께 나란히 서서 당당히 화면 절반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된 모습은 음성언어를 이용하는 국민에게도 인상 깊게 다가오는데,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용환 위원장
(이하 김 위원장)

예전에는 농인들이 작은 동그라미에 집중하느라 힘들었고 피로감도 컸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부터 발표자와 나란히 서서 수어를 통역하는 통역사가 생겨 뉴스 보기가 굉장히 편안해져서 내용에 쉽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화면 절반을 채우는 통역사를 보면서 많은 농인들이 수어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느끼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됐습니다.

▲(왼쪽부터) 김용환 위원장, 고경희 통역사, 권동호 통역사

이 연구관

공공수어 통역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위원장

농인에게 수어는 모국어입니다. 청인 사회에서 농인의 알 권리와 언어권을 보장하려면 수어 통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고경희 통역사
(이하 고 통역사)

수어 통역 20년 차인 제게 농인은 장애인이 아닌 수어라는 언어를 가진 소수민족입니다. 외국어를 모르면 외국인과 소통이 안 되듯, 수어를 모르면 농인들과 소통이 안 되는 것일 뿐입니다. 수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국민에게 공공수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수어를 모르더라도 저희처럼 수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해 준다면 청각장애인이란 인식보다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질 거라고 봅니다. 저처럼 말이죠. 또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가 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위상의 언어로 인정했습니다. 이는 수어통역사로서 정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권동호 통역사
(이하 권 통역사)

한국은 청인뿐 아니라 농인도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외국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면 한국인을 위해 자막이 붙는 것처럼, 되도록 많은 한국어를 농인의 모국어인 수어로 통역해 주어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공수어 통역은 꼭 필요합니다.

이 연구관

공공수어 통역 이후 통역사로서 느끼는 변화가 있을까요?

권동호 통역사

공공수어 통역 이전에는 통역을 위해 행사나 세미나 등에 참석하면 수어통역사를 가장자리에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현장에서마저 수어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공공수어 통역 이후에는 화자의 바로 옆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이는 농인분들뿐 아니라 통역사인 제게도 상당히 고무적이어서 참 기뻤습니다.

이 연구관

갑작스러운 코로나 19 유행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정부 발표가 있는데, 농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고 통역으로 보기 편안한 발표자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 통역사

요즘 가장 유명하시고, 우리와 가장 자주 화면에서 만나는 정은경 본부장님이 침착하게 잘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 장점이 자연스럽게 그 옆에 있는 통역사에게 옮겨 갑니다. 내용도 정리가 잘 되어 있어, 통역하기에도 통역된 수어로 보기에도 제일 편합니다.

이 연구관

역시 가장 인기 있는 분다우시군요.(일동 웃음)

 

공공수어, 문장식 아닌 쉽고 이해 빠른 농식으로 발전해야

▲ 이번 대담에는 김 위원장과 질문자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수어통역사가 함께했다.

이 연구관

본격적으로 공공수어 통역이 시작되면서, 보완해 나가야 할 점들이 속속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

공공수어 품질관리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보니, 수어통역사들이 통역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코로나 19 관련 내용이 워낙 어려워 초반에는 오역이 생기기도 했죠. 또 수어에는 비수지1)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특히 표정이 중요한데 초반에는 통역사들이 긴장한 탓인지 비수지가 잘 표현되지 않아 내용 전달이 미흡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지요.
하지만 여전히 공공수어가 너무 문장식이라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농인에게는 농식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는데, 농식이 더 시원하고 이해가 빠르거든요.
1) 비수지: 손동작을 제외한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

이 연구관

농식과 문장식은 무엇이 다른가요?

고 통역사

영어와 한국어의 문장 배열이 다른 것처럼, 한국 문장식 수어와 농식 수어가 다릅니다. 사실 문장식 수어나 농식 수어라는 표현보다 한국수어와 수지한국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문법과 수어 문법은 다릅니다. 수어 문법체계에 따라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어가 한국수어이고, 수어와 한국어 문장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이 수지한국어입니다.

권 통역사

예를 들어 사망자 발생 사실을 음성언어로 발표할 때는 무표정하게 사실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수어에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비수지가 들어가야 사망 사실이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비수지가 들어가지 않으면 수어가 아닙니다. 이것이 한국어와 수어의 차이입니다. 한국어는 사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내용이 전달되지만, 농인은 표정까지 있어야 사망이라는 의미가 완성됩니다. 이것이 농식입니다.

김 위원장

침착하고 차분한 통역으로는 농인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수어 어휘 하나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비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야 언어가 완성됩니다.

이 연구관

그동안 공공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수어 통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불편을 겪어 왔을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

재난 상황이 갑자기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청각장애인부터 시각장애인까지 여러 유형의 장애인 중 누가 가장 빨리 대처할 수 있을까요? 바로 시각장애인입니다. 재난 방송을 듣고 바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농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주변에 물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시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공공수어 통역으로 정보 접근성이 한층 빨라졌습니다.

이 연구관

코로나 19 상황에 각종 발표를 하루에도 몇 번씩 통역하니 통역사들의 부담이 클 것 같습니다.

권 통역사

동시통역이고, 공공수어 통역인데다 대본 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늘 긴장합니다.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발표 현장에 설 때마다 떨립니다. 뉴스에서 수어 통역을 한 지 8년이 넘었는데 아무도 제가 뉴스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공공수어 통역은 이제 두 달 했는데,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수어 통역의 존재를 알아 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연구관

수어통역사의 처우는 어떤가요?

고 통역사

기본적으로 수어통역사도 외국어통역사와 동일한 수준의 비용이 책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어 통역은 피로도가 매우 높아 20분마다 교대를 해야 통역 서비스 질이 유지됩니다. 그렇기에 수어 통역은 2인 1조가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몹시 낮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처음부터 이 점에 이해가 깊어, 통역 배정을 2인 1조로 해 주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 통역사

수어 통역은 봉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수어 통역을 아직까지도 전문 언어 통역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공공수어 통역, 농인 통역사도 함께 서는 날 오길

▲ 대담을 마친 후 국립국어원 앞에서 수어로 ‘사랑해요’ 인사하고 있는 세 사람

이 연구관

코로나 19가 신종 바이러스이다 보니 다양한 신조어들이 쏟아졌습니다. 관련 수어도 많이 생겼을 텐데 사용하기 어떠신지요.

김 위원장

공공수어 품질관리 위원으로 농인과 국어원 사이에서 제가 눈치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일동 웃음) 처음에는 ‘우한’의 지명을 딴 수형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지명 대신 ‘코로나 19’로 사용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수어로 구사하기에는 지명을 딴 수형이 더 편합니다. ‘코로나 19’는 억지로 수형2)을 만드는 느낌을 주어 불편합니다. 청인들은 코로나 19가 편할지 몰라도 농인들은 어렵습니다.
2) 수형: 손과 손가락의 모양

▲ 코로나 19

▲ ‘우한’ 지명을 딴 코로나 19

고 통역사

저 역시 지명을 딴 수형으로 통역할 때가 더 편했는데, ‘코로나 19’로 바뀌면서 어려워졌습니다. 코로나 ‘19’ 수형은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이 연구관

그럼 코로나 19 관련 신조어 중 사용이 편한 것은 뭔가요?

김 위원장

‘자가격리’라는 수어가 제일 괜찮습니다.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또 ‘침방울감염’도 사용하기 편합니다.

▲ 자가격리

▲ 침방울감염

이 연구관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가 만들어진 지도 4년여가 되어 가는데, 수어 정책 등과 관련해 꼭 남기고 싶은 말이나 건의 사항 등이 있을까요?

김 위원장

먼저 지금 너무 고생하고 있는 통역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정부 발표 시, 감염 위험이 있는 악조건 속에서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마스크도 쓰지 않고 통역하는 모습에 걱정도 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공공수어가 농인을 위해 통역되고 있는지 점검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청인에게 어감이 있듯, 농인에게도 언어의 느낌이 있습니다. 공공수어 통역 초반에는 이런 농인 언어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어요.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직역이, 또 어떤 부분에서는 의역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비수지 기호입니다. 농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어법으로 전달되는 공공수어 통역으로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권 통역사

수어통역사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국립국어원과 한국농아인협회가 협업해서 수어통역사 자질 및 수어 통역 품질 점검 외에도 통역사의 전문성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가 하루빨리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고 통역사

미국이나 캐나다는 농인 통역사가 청인 통역사와 함께 직접 발표 현장에서 통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미국은 재난 시에 농인 통역사가 반드시 함께 통역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통역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외국을 여행한다고 할 때 한국인 가이드와 외국인 가이드 중 어느 쪽이 한국인에게 편안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 중요성이 쉽게 이해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인통역사 뿐만 아니라 농인 통역사도 발표 현장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연구관

외국에 비하면 공공수어 통역 시행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공공수어 통역이 모범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국립국어원에서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하신 현장 통역사님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며 오늘 대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현장 통역: 윤남, 문혜영
정리: 강은진
사진: 김영길
영상: 임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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