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로 함께하기

안녕! 한글아! 한글의 어제 그리고 오늘 역사 속 한글 이야기
안녕! 한글아! 한글의 어제 그리고 오늘 역사 속 한글 이야기

 한글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과 함께 세계에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이 항상 꽃길만 걸었을까요? 한글은 때론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감수해야 했던 적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설움을 함께 겪어야 했습니다. 한글 창제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 한글을 함께 살펴볼까요?

훈민정음 창제 이전

훈민정음 창제 이전

 고유한 문자가 없어 한자의 음과 뜻으로 우리말을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한자는 배우기 어려워 일반 백성들은 사용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백성들은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담아 내지 못했고, 지식을 얻기도 어려웠습니다.

15세기,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 창제되다

15세기,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 창제되다

세종 25년: 훈민정음이 만들어졌습니다. 백성들의 언어생활을 편안케 하고자 했던 세종 임금의 애민정신이 깃든 훈민정음은 1446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완성되어 반포되었습니다.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가 지어졌습니다.

같은 해 훈민정음이 ‘이과’ 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과는 말단 행정 실무를 보던 ‘서리’를 뽑는 시험입니다.

세조 6년: 훈민정음이 ‘문과’ 과거 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대부 양반 계층에도 훈민정음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간경도감’이 설치되었습니다. 간경도감에서는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등을 비롯한 많은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풀어 간행했습니다.

16세기, 훈민정음, 수난을 겪고 다시 일어서다

16세기, 훈민정음, 수난을 겪고 다시 일어서다

연산군 10년: 자신을 비난하는 글이 훈민정음으로 적혀 있었다고 하여 연산군은 훈민정음의 교육 및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참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훈민정음으로 된 책도 모두 불태우게 했습니다.

한자 3,360자에 훈민정음으로 뜻과 음을 달아 놓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가 발간되었습니다. 지금의 한글 자모의 이름은 이 책에서 비롯합니다. 이 외에도 ≪주역언해≫, ≪가례언해≫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훈민정음으로 발간됐습니다.

한자 입문서인 ≪천자문≫을 훈민정음으로 뜻과 음을 단 ≪석봉천자문≫이 간행되어, 훨씬 쉽게 한자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18세기, 훈민정음, 문학과 실용서로 백성의 삶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다

17~18세기, 훈민정음, 문학과 실용서로 백성의 삶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다

≪동의보감≫이 편찬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640여 개의 향약명이 훈민정음으로 쓰여 있습니다.

농사 장려와 농사 기술을 다룬 ≪농가집성≫이 간행되었습니다.
≪농사직설≫, ≪권농문≫, ≪금양잡록≫, ≪사시찬요≫를 한데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정철의 ≪송강가사≫가 간행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가사 문학의 절정을 이룹니다.

김천택이 ≪청구영언≫을 간행하였습니다.
당시 구전되던 시조 580수를 모아 문학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규장각이 설치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역대 임금의 글이나 훈민정음으로 쓴 문서와 편지 등을 보관하고, 많은 책을 편찬·인쇄·반포하였습니다.

19세기, 훈민정음, 국문이 되다

19세기, 훈민정음, 국문이 되다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밝힌 유희의 ≪언문지≫가 나온 해입니다.

최초의 외국어 사전 ≪한불자전≫이 출간되었습니다.

고종 31년: 갑오경장으로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의 공식 문자, ‘국문’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이에 따라 모든 공문서도 훈민정음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됩니다.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국문 전용·국문 띄어쓰기·쉬운 국어 쓰기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훈민정음, 한글이 되다

20세기, 훈민정음, 한글이 되다

훈민정음이 ‘한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글’의 ‘한’은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韓’ 외에 ‘大’의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여 조선어연구회에서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였습니다.

조선어학회가 주도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일제는 학교에서의 한글 교육과 사용을 금지하고, 이어서 한글 서적 출판도 금지했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었습니다.
한글의 창제 배경과 원리를 명확하게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던 분들이 투옥되고,
일부는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조선어연구회가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각지에서 만여 명이 모여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잃어버렸던 ≪조선말큰사전≫ 원고가 발견되었습니다.
1949년에 제1권을 펴냈고, 1957년을 제6권을 펴내어 완간이 되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전신인 ‘국어연구소’가 개소했습니다.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이 제정되어 고시되었습니다.

공식적인 국가 기관으로서 국립국어연구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표제어 50만 규모의 ≪표준국어대사전≫이 발간되었습니다.
2002년부터 인터넷 사전으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글, 새롭게 날다

21세기, 한글, 새롭게 날다

「국어기본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씀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1991년에 국경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005년 국경일로 재승격되었고, 2012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매년 한글날큰잔치가 열립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국가 차원에서 한글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해 한글을 전승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전시와 행사로 많은 국민들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개방형 웹 사전인 ‘우리말샘’을 개통하였습니다. 100만 개가 넘는 어휘가 수록되어 있고, 이용자 참여로 매일매일 발전하는 사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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