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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발견 다시 보는 한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오늘의 발견 다시 보는 한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한글창제의 여러 가설 중 하나를 실제처럼 구성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지난여름 많은 논란 속에 개봉되었습니다. 국어원은 한글날을 맞아 일반인의 한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세종 친제설’(김무봉 교수), ‘세종·신미 합작설’(정광 교수)을 독자들에게 나란히 소개합니다. 이 글들은 한글 창제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것으로, 국립국어원의 의견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훈민정음 창제의 두 주역, 세종대왕과 신미대사

정광(고려대 명예교수)

 한글에 대하여 우리 민족은 대단한 애착을 갖고 있고 누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매일 한글을 시용하면서 이 문자의 유용함과 편리함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용하는 이 문자에 대하여 누가 어떻게 제정하였는지, 그 배경 이론은 무엇인지, 주변 문자와의 관계는 어떤지에 대하여 너무 알려진 것이 없다. 그저 학교에서 가르친 대로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가 없는 문자를 독창적으로 만드셨다.”가 한글 창제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이다. 세종을 창힐(蒼頡)1)과 같은 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한글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창제라는 주장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우리말과 우리글의 연구에서 특별히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져서 한글을 연구하는 분들은 이 문자의 우수함을 자랑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삼고 있어 이를 자랑하기에 급급할 뿐 한글을 세종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든지 다른 문자와 비교한다든지 하는 것은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1)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황제 때의 좌사.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본떠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파스파 문자, 고려 말・조선 초에 한자음 표음으로 널리 쓰여

 그러나 제왕(帝王)인 세종이 혼자서 백성들을 위하여 새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신화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글을 문자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특히 외국인 연구자들은 이러한 신화를 믿지 않는다. 한국의 국내 연구에 기대거나 한류에 편승하려는 일부 외국 연구자를 빼고는 대부분의 한글을 연구하는 외국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주변 문자와의 관계, 특히 한글보다 170여 년 전에 표음 문자로 만들어진 파스파 문자와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 일부 연구자들은 한글이 파스파 문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필자가 보다 못하여 2008년 11월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훈민정음 자형(字形)의 독창성”을 발표한 후에는 이러한 주장들이 좀 잦아들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한글과 파스파 문자와의 관계를 모방으로 보려는 연구자들이 없지 않다.
 외국의 연구자들만 한글이 파스파 문자와 관련이 있다고 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학들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예를 들면 유희(柳僖)의 「언문지(諺文志)」(1824)의 ‘전자례(全字例)’에서 “諺文雖刱於蒙古, 成於我東, 實世間至妙之物(언문은 비록 몽골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세간에 지극히 오묘한 것이다.)”라고 하여 한글이 몽골의 파스파 문자에서 발달한 것으로 보았다. 이어서 같은 책의 ‘초성례(初聲例)’에서는 “我世宗朝命詞臣, 依蒙古字樣, 質問明學士黃瓚以製(우리 세종께서 신하들에게 명하시어 몽골 글자에 의거하고 명의 학사 황찬에게 질문하여 지은 것이다.)”라고 하여 훈민정음이 蒙古字樣(몽고자양), 즉 파스파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주장한 훈민정음의 몽골 문자 기원설을 추종한 것이다.
 실제로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파스파 문자는 많은 지식인들이 알고 있는 한자음의 표음문자였다. 신숙주는 파스파 문자로 한자음을 표음한 <몽운(蒙韻)>, 즉 『몽고운략』, 『몽고자운』, 증정 『몽고자운』을 인용하였고 그들의 한자음 연구에 이 <몽운>을 이용한 것은 그의 『사성통고』와 이를 전재한 최세진의 『사성통해』를 통하여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역관들의 과거인 역과(譯科)에서는 ‘첩아월진(帖兒月眞)’이란 이름의 파스파 문자를 시험하였다. 따라서 파스파 문자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한자음 표음에 편리한 문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훈민정음, 파스파 문자 대신 한자음을 적기 위해 만들어진 것

 한글 창제에 대한 또 하나의 관심은 누가 한글을 창제하였는가 하는 문제다. 모두에 말한 대로 ‘영명하신 세종대왕의 창제’로 보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제왕의 일에는 많은 신하들이 참여하여 도와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도왔는지 별로 연구가 없다.
 우선 세종의 주변에서 새 문자의 제정을 도운 이가 유학자들은 아닌 것 같다. 원나라 이후에 북경 주변의 중국 동북 방언으로 발음되는 중국 한자음과 당나라 때의 서북 방언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우리 한자음, 즉 동음(東音)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세종은 같은 한자의 발음이 우리와 중국이 서로 다른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고심하였다.
 그래서 창안한 것이 동국정운식 한자음이었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새로운 한자음을 정하는 것을 동음으로 한자를 익힌 기성학자들이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새 문자와 새 한자음의 제정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또 몽골의 원(元)이 한자 문화에 저항하기 위하여 파스파 문자를 제정한 것처럼 조선이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을 명(明)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기성 유학자들의 반대와 명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가족과 일부 젊은 유학자들만을 동원하여 암암리에 창제 작업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요동에 유배를 온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에게 한자음을 듣고 이를 새로 만든 문자로 적어 오도록 신숙주와 성삼문을 파견한 것으로 보면, 졸저 『증정 훈민정음의 사람들』(2019)에서 고찰한 것처럼, 훈민정음의 <해레본> 편찬에 관여한 ‘친간명유(親揀名儒)’의 8명이 세종의 가족들과 함께 새 문자 제정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도와서 만든 새 문자는 반절(反切)과 관계가 있다. 반절은 졸고 “반절고(反切考)”(『어문논집』 제81호, 『中國語學 開篇』, 東京: 好文出版, 『國際漢學』, 北京: 外硏社)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역(西域)의 역경승(譯經僧)들이 불경을 한역(漢譯)하기 위하여 한자를 학습할 때에 한자의 발음을 표시하려고 개발한 것이다. 한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그 발음을 따로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절은 서역의 역경승들이 자신들의 범자(梵字)를 반자(半字)로 나누어 배운 것처럼 한자도 발음을 2자로 표음하여 배우고자 만든 것이다. 리그베다 경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즉 범어(梵語)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개음절의 언어로서 이를 표기하는 범자(梵字)는 자음+모음으로 된 음절 문자다. 따라서 고대 인도에서 범자를 교육하기 위하여 자음과 모음의 글자를 각기 반자(半字)로 보아 먼저 이를 교육하는 반자교(半字敎)가 있었다. 반쪽 글자의 교육은 말하자면 알파벳 교육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글자를 만자(滿字)라고 하고 이를 교육하는 것을 만자교(滿字敎)라고 하였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완성된 음절 문자는 실담(悉曇)으로 불린다. 실담은 범어 'sidh-(완성하다)‘에서 온 파생명사로서 ’완성된 글자‘ 즉, 만자(滿字)를 말한다. 알파벳 교육인 반자교와 실담의 교육인 만자교는 여러 불경에서 반만이교(半滿二敎)라고 소개하였는데 모두 범자(梵字)의 문자 교육이다.
 이러한 범자의 교육으로부터 역경승들은 한자음도 이러한 반자(半字)와 만자(滿字)의 방법으로 학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한자음은 범어와 달리 음절 구조가 복잡하다. 즉, 자음과 모음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모음 다음의 음절 말(coda)에 다른 자음이 결합된다. 따라서 역경승들은 음절 초(onset)의 자음과 나머지(rhyme)로 구분하고 이들의 결합으로 한자음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한자음을 첫 자음의 반절상자(反切上字)와 나머지의 반절하자(反切下字)로 구분하여 2자로 표음하였다. 즉, 동녘 동(東)자를 덕(德)의 [t]와 홍(紅)의 [ong]을 결합시켜 ‘덕홍절(德紅切)’의 [tong]으로 발음을 표음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중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반절상자를 성(聲)으로 하고 반절하자를 운(韻)으로 하는 성운학(聲韻學)을 발달시켰다. 그리하여 수나라 때의 『절운(切韻)』 이후에 중국의 모든 운서는 이 반절로 한자음을 표음하기에 이른다.
 훈민정음으로 불리는 언문(諺文)은 반절로 인식하였다. 즉, 한글의 기역, 니은을 처음으로 보여 준 『훈몽자회』의 「언문자모」에는 부제(副題)로 “반절27자(反切二十七字)”라 하였다. 언문, 즉 훈민정음을 반절로 본 것이다.
 또 세조 5년에 간행한 신편 『월인석보』에 첨부된 「세종어제훈민정음」의 협주에 ‘훈민정음’을 “백성 가르치시는 바른 소리”로 풀이하였다. 즉, 임금이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올바른 한자음이란 뜻이니 세종이 새로 만든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말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음하는 기호라는 뜻이다.

모음 글자는 신미대사가 만들어

 신미대사가 새 문자의 제정에 가담한 것은 초기에 반절상자를 언문 27자로 만든 이후의 일이다. 즉, 한글 제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권103) 세종 25년 12월조에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中略] 是謂訓民正音(이 달에 임금이 언문 28자를 친히 만들었으니 …중략…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하다.)”라는 기사다. 그러나 바로 2개월 후인 세종 26년 2월의 최만리 반대 상소에는 “언문 27자”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임홍빈 교수는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국어학논총』, 2006)에서 세종 25년 12월의 기사는 나중에 추가된 기사라고 보아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필자는 『증정 훈민정음의 사람들』(2019)에서 세종 25년 12월의 기사는 최만리의 반대 상소에 보이는 것과 같이 반절상자의 초성만을 기호로 만든 언문 27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운회’를 번역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여기서 운회는 <고금운회>를 말하며 이 운서로 『몽고운략』을 수정한 『몽고자운』이 있으니 운회의 번역은, 곧 몽운의 번역을 말한 것이다. 몽운의 파스파 문자를 새 기호로 교체하여 한자를 표음한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다.
 그러다가 범자와 고대 인도에서 발달한 비가라론(毘伽羅論)의 성명기론(聲明記論)을 전공한 신미대사가 이 사업에 참가하면서 범자의 모음자인 마다(摩多)에 이끌려 중성자 11자를 추가하였다. 실담장(悉曇章)2)에서 마다는 12자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초성, 중성, 종성이 구비되어 이 문자로 우리말도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신미대사를 세종에게 추천한 것은 효령대군이다. 속리산 복천사에 우거하면서 범자와 성명기론에 정통한 것으로 이름을 날리던 신미를 세종이 수양대군을 보내어 불러 효령대군의 집에서 만난다. 그때는 최만리의 반대 상소로 인하여 세종이 새 문자 제정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할 때였다. 세종과 신미의 만남에 대하여는 신미의 동생인 김수온(金守溫)의 『식우집(拭疣集)』(권2) 『복천사기』에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세종은 신미의 새 문자에 대한 지식을 인정하여 수양대군과 김수온과 더불어 『증수석가보』를 언해하고 『석보상절』을 편찬하게 한다.
 새 문자로 한자음만 아니라 우리말도 기록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 것이다. 또 자신도 『월인천강지곡』을 저술하면서 스스로 이를 확인한다. 그리고 이 둘을 합편한 『월인석보』의 제1권 권두에 훈민정음의 <언해본>을 붙여 간행하여 언문, 즉 우리말을 표기하는 새로운 문자를 공표한다. 한글은 이렇게 제정된 것이다.

2) 싯다마트리카체가 6세기경 중국으로 들어가 변화해 주로 불교 경전을 적는데 쓰이고,
6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한국과 일본에서 쓰였던 실담 문자의 모음과 자음의 표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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