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우리말
찰나의 우리말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날도 시작은 매우 평범했다. 늘 그렇듯이 연구실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전자 우편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주말 동안 수신된 수십 통의 편지가 우편함에 담겨 확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씩 확인하고 답장을 써 가다가 일요일 오후에 배달된, 너무나도 흥미로운 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되었다. 놀랍고 신기해서 소름이 돋았다.
 편지를 보낸 분은 일본 나고야 대학의 우츠기 아키라 교수였다. 우츠기 교수의 편지에는 그해 봄 한국을 방문해서 필자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필자가 혹시나 찾으면 보내 달라고 부탁했던 바로 그 자료가 담겨 있었다. 우츠기 교수의 도움을 받는다면 필자가 원하는 자료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부탁했던 터였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필자가 원하는 자료가 담긴 편지가 배달된 것이다.

 필자가 우츠기 교수에게 부탁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자료였다. 우츠기 교수와 만났을 때 필자는 우츠기 교수에게 혹시 일제 강점기에 출간된 자료를 읽다가 한국인들에게 일본어의 장단을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우츠기 교수는 그런 자료를 본 적이 없다고 답했고, 필자는 혹시 관련 자료를 보게 되면 바로 알려 달라고 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리라 생각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세우게 된 가설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 가설은, 한국어 장단의 전통성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이며, 그러한 신화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어 장단 교육이 자리 잡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설을 세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장단의 구분을 통해 단어의 뜻이 서로 구분되는 고유어 명사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 때문이었다. 표준어 해설에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장단이 오랫동안 한국어에서 ‘단어의 의미 변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면 고유어 명사 중에서 장단에 의해서만 서로 구분되는 단어의 쌍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유어 명사 중에서 장단에 의해 구분되는 단어의 쌍은 어느 정도나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표제어 5만 개 정도의 중사전을 대상으로 확인해 보았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전 표제어 중에서 고유어 명사의 목록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록에서 동음이의어, 즉 소리는 같은데 뜻이 다른 단어의 쌍을 모두 나열한다. 나열한 동음이의어 쌍을 대상으로, 장단에 의해 단어의 뜻이 구별되는 단어 쌍이 존재하는지 확인한 후 목록을 추려 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추려진 단어의 쌍은 총 34쌍에 불과했다.

 그나마 34쌍 중에서도 11쌍은, 원래 2음절 단어였던 것이 1음절로 줄어든 경우이거나 단음인 쪽이 의존 명사인 경우였다. 전자의 예로는 ‘다음’의 준말인 장음 [담ː]과 담장을 의미하는 단음 [담]의 대립이다.

 또, 후자의 예로는 장음인 먹는 [김ː]과 모락모락 나는 [김ː]과 단음인 의존 명사 [김]의 대립이다. 전자는 장음이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음절의 축약으로 인해 생긴 보상적 장음화의 결과라는 점에서, 후자는 의존 명사의 특성상 말의 시작에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단어의 시작에서 보이는 장음과 단음의 대립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한 장단의 대립쌍으로 보기 어렵다.

 총 34쌍 중에서 이들 11쌍을 제외하면 23쌍이 남는다. 그런데 이 23쌍 중에서 3쌍은 장단 대립의 쌍으로 시작하는 복합 명사, 즉 [눈]과 [눈ː]의 대립이 복합 명사 [눈길]과 [눈ː길], [눈물]과 [눈ː물], [눈싸움]과 [눈ː싸움]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였다. 이렇게 또 복합 명사 3쌍을 제외한다면 고유어 명사 중에서 장단의 대립만으로 단어의 뜻이 구별되는, 진정한 장단 대립의 단어의 쌍은 모두 20쌍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장단이 단어의 의미 변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표준 발음법 해설의 설명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반면에 일본어는 모음의 장단이 단어의 뜻을 구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언어다. 모음을 길게 발음하는가, 짧게 발음하는가에 따라서 단어의 뜻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첫음절의 모음이 짧은 ‘ゆき[유키]’는 ‘눈(雪)’을, 첫 음절의 모음이 긴 ‘ゆうき[유ː키]’는 ‘용기’를 의미한다. 또, 둘째 음절이 짧은 ‘おばさん[오바산]’은 ‘아주머니’를, 둘째 음절이 긴 ‘おばあさん[오바ː산]’은 ‘할머니’를 의미한다. 이렇게 일본어는 모음이 장음이냐 단음이냐에 따라서 단어의 뜻이 달라지는 장단의 대립을 보인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 사람들은 일본어를 ‘국어’로 배우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학생들의 모국어가 일반적으로 한국어였던 만큼, 한국어에 장단이 없었다면 일본어의 장단을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어 교육과 관련된 자료에서 한국인에게 일본어의 장단을 가르치기가 어렵다거나, 한국인들이 일본어의 장단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기술을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우츠기 교수에게 이런 자료를 보게 되면 보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자가 세운 그 가설을 정확히 뒷받침해 주는 자료를 우츠기 교수가 찾아서 보내 준 것이다. 그 자료는 1942년 조선총독부가 엮은 1학년 읽기 교과서 상권의 교사용 해설서였다.
 우츠기 교수는 이 교사용 해설서의 226쪽부터 260쪽 사이에 있는 ‘國語音聲學槪要(국어음성학개요)’라는 제목이 달린 장 전체를 스캔하여 보내면서 특히 248쪽에 있는 ‘장모음’ 부분을 번역하여 보내 주었다. 여기서 ‘국어’란 물론 ‘일본어’를 의미한다.

 [그림 1]에 보인 것은 일본어와 한국어(조선어)의 모음을 비교하는 소절의 마지막 부분이다. 두 언어의 모음을 비교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장모음과 관련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림 1]에 빨간색 상자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해당 부분이다. 이 부분의 내용은 그림의 오른쪽에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은 우츠기 교수가 직접 한 것으로 그 내용을 전자 우편에 함께 보내 주었다. 해당 부분의 내용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 모음에는 원칙적으로 장단의 구별이 없다. 그래서 한국인 아동들은 일본어의 모음 장단을 틀리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교육 시에 충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일본어가 모국어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해설서의 작성자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아동들이 일본어의 장단을 자주 틀린다는 것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아동들의 모국어인 한국어의 특징, 즉 모음의 장단 구별이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음과 연결시키고 있다.

 교사용 해설서의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일제 강점기 일본어를 ‘국어’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일본인 교사로부터 교육 현장에서 장단에 대한 지적을 받았을 것으로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내용이 1학년 읽기 교과서의 교사용 해설서에 언급된 만큼,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교사로부터 장단과 관련한 주의 사항을 지속적으로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학생들이 장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가지고 있기 때문임이 지목된 상황에서, 일제 강점기 동안 모음의 장단을 구별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교육의 정도를 나타내 주는 잣대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장단의 구분 여부는 단순히 장단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 그 이상을 나타내 주는 상징으로 작용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 교육 현장에서, 또 방송 언어와 관련된 논의에서 왜 그렇게 장단의 구분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지가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어에서 장단은 사실 의미 구별 기능이 뚜렷하지 않다. 단어의 장단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지난 글에서 논의했듯이 표준어 화자들이 장단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보고는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논문에 등장했고, 장단의 대립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1988년 제정된 표준 발음법 해설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바였다.

 장단의 대립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표준 발음법에 장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혹시나 일제 강점기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가진 장단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와 그 콤플렉스의 대물림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표준 발음법 해설은, 현실성이 없는 장단의 구별이 표준 발음법에 포함된 이유를 장단의 전통성에 기대어 설명하고 있다.

 즉, 오랜 기간 지켜져 왔고, 의미 변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 한국어를 관찰한 일본인 연구자들이 한국어에 장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는 데다가, 실제로 고유어의 명사가 장단으로만 구분되는 쌍을 살펴보면 많이 잡아도 34쌍, 적게 잡으면 20쌍에 불과하다. 조선총독부가 펴낸 교사용 해설서의 관찰이 맞다면,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어에서 장단의 대립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즉, 장단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유지되어 왔다고 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장단이 의미 변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장단을 구별하여 발음해야 한다는 장단의 전통성은 근거를 갖춘 ‘역사’가 아니라 근거가 희박한 ‘신화’일 수 있다는 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실 장단은 한국어에서 의미 변별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15세기 존재했던 성조가 없어지면서 상성이 지녔던 잉여적 요소로서의 장음이 해당 어휘에 남아있던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존재했으나 그 존재가 크게 의식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한국어의 장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를 ‘국어’로 교육받는 과정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장단에 대한 민감도를 갖추게 되었고, 이러한 장단 민감도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잉여적인 요소로서 존재하던 한국어의 장단에까지 전이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단의 전통성은 신화가 되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통해 학습된 장단의 구분 능력은 이제 더 이상 우월적 지위로서 작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장단의 ‘전통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표준 발음법의 장단과 관련된 조항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표준 발음법이라는 성문화된 규정을 통해 발음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단어의 발음이 궁금할 때 확인할 수 있는 발음 사전이지, 표준 발음 규정이 아니다.

글: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