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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는 우리말

우리말, 그리고 사람
우리말, 그리고 사람

 이승현 아나운서에게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강의는 ‘아나운서가 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는 일이다. 가능성이 무한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칠 수 있어 방송을 할 때보다 보람이 더 크다고 한다. 그 즐거운 중독성 때문에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든든한 우리말 선생님으로 나섰다.

얘들아, 우리말 공부하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단어가 모두 몇 갠지 아세요? 현재 무려 40만 개가 넘는다고 해요. 여러분은 이렇게 풍부한 어휘들을 적절하게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나요? 습관적으로 몇 단어만 쓰면서 스스로 언어 능력이 발달할 기회를 없애고 있지는 않은가요?”

 이승현 아나운서가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강의에서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국어사전에 그토록 많은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고 하니, 듣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놀란다.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은 한국방송 아나운서들이 직접 전국의 초·중등학교에 찾아가 바른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전하는 교육 사업으로 한국방송 아나운서실의 한국어연구회가 올해로 9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승현 아나운서는 2016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해 강의부터 주제 선정, 교안 만드는 일까지 책임진다.
 올해는 ‘다양성의 이해’를 주제로 아나운서들이 전국의 105개 학교를 찾아간다. 학생들이 평소 무심코 쓰는 장애, 성, 인종과 관련된 차별적인 표현들을 일깨워 주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려면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알려 준다.

 “요즘 아이들은 나쁜 말만 쓰고, 바른 우리말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정말 편견이에요. 수업 시간 내내 얼마나 눈빛이 초롱초롱한데요. 아이들의 반응이 얼마나 폭발적인지, 마치 ‘뮤직뱅크’ 무대에 선 아이돌 가수가 된 것 같다니까요.(웃음) 한편으론 어른들이 고운 말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라서 나쁜 말에 길들여진 건 아닌가, 씁쓸하기도 해요.”

내 직업의 정체성을 실감하는 일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사업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따로 나이대를 정한 이유가 있을까?

 “이 시기의 아이들은 뭐든 잘 흡수해요. 주변 친구들이나 누리그물에서 접한 나쁜 언어에 물들기 쉽죠. 또래 집단 문화가 강하니까요. 다행스러운 건 좋은 쪽으로도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거예요. 이 나이대가 언어 습득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거의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바른 우리말 표현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요즘은 현장에 자주 나가기보다는 기획과 교안을 만드는 데 더 몰두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강의를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현직 선생님들과 머리를 맞댔다.

▲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강연 현장 (한국방송 제공)

 그 결과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비속어, 줄임말에 해당하는 바른 표현을 알아보는 시간과, 문제 맞추기, 영상 보기, 자신이 쓰고 있던 차별적인 표현 확인하기 등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강의에 참여할 수 있게 알차게 꾸며졌다.

 “요즘 아이들이 자주 쓰는 비속어 중에 ‘쩐다’ 라는 말이 있어요. ‘퍽’, ‘정말’, ‘무척’ 이런 말로 바꿔 쓸 수 있다고 알려 주죠. 또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무심코 쓰는 표현 중에 ‘진지충’, ‘관종’, ‘된장녀’ 같은 단어들이 있는데요. 이 모두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차별·혐오 표현이라는 걸 일깨워 줍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실생활에서 바로 변할 수 있게 대체 표현을 가르쳐 주고, 왜 나쁜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하는지 이유까지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강의가 진행될수록 아이들뿐 아니라, 그 학교의 선생님들이 더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고 크게 반성했다는 말은 자주 전해 듣는 소감이다.
 그가 아나운서로서 하는 업무 중에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은 대중들과 가장 가깝게 만나는 일이다. 많은 정성이 필요한 일인 만큼 고되긴 하지만, 그걸 잊을 만큼 보람이 크다.

 “저도 15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직접 바른 언어 표현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이 일이 참 좋아요. 아나운서는 바른 우리말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텔레비전 이나 라디오 방송을 할 때도 늘 언어 표현에 신경을 쓰지만, 이 일이 제가 아나운서라는 걸 가장 실감하게 해 줘요.”

방송 중에도 국어사전을 찾아봐요

 강의 준비를 하거나 방송 준비를 할 때 가장 든든한 동반자는 다름 아닌 국어사전이다. 매일 텔레비전 방송인 <생방송 아침이 좋다>, 라디오 방송인 <국악의 향기>를 진행하는데, 헷갈리거나 궁금한 표현이 있으면 방송 중간에도 몰래 휴대전화를 열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한다.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게 즐겨찾기를 해 뒀다.

 강의 준비를 할 때는 ‘우리말샘’에서 다양한 예문을 찾아본다. 예전에는 국립국어원의 ‘가나다 전화’도 자주 활용했지만, 요즘은 카카오톡에 ‘우리말365’를 친구추가해 두고 이용한다.
 몇 년 전 <스포츠 9>을 진행할 때는 어려운 스포츠 용어들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 쓰려 애썼다. ‘전지훈련’같은 일본식 표현도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스포츠 뉴스 마지막에 ‘오늘의 골 세리머니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대신할 말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골 뒤풀이’라고 했더니, 시청자가 항의한 적이 있었어요. 익숙한 말을 놔두고 어색한 말을 쓴다고요. 우리말다움과 익숙함 사이의 적절한 부분을 저 같은 아나운서나 우리말과 관련된 사람들이 더 많이 고민해야겠지요.”

 이승현 아나운서는 앞으로 우리말과 관련해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이 많다. 한국방송 아나운서실의 한국어연구회에서 활동하 면서 그런 바람이 더 커졌다. 한국어연구회는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사업 외에도 ‘한국어 포스터 특별전시회’, 라디오 ‘바른 말 고운 말’방송, ‘한국어 상담전화’ 운영 등 다양한 활동 으로 바른 한국어 사용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한국어연구회에 속한 아나운서들이 100명이 넘습니다. 모두 훌륭한 우리말 선생님이 될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이 충분한 인재들이죠. 국립국어원과 우리 아나운서들이 뭉쳐서 신뢰할 수 있는 한국어 교육 기관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립국어원의 연구와 아나운서들의 전달력이 합쳐지면 멋진 결과물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 한국어연구회에서 만든 우리말 포스터 (한국방송 제공)

 먼 훗날을 꿈꾸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과 방송에 매진하겠다는 이승현 아나운서. 누구보다 우리말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아이들에게 기꺼이 나눠 주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고운 우리말처럼 향기롭다.

글: 정성민
사진: 김장현, 한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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