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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실에서
무지개를 만드는 한국어 교사 - 중국 베이징 기업체 한국어 강사 한주연

무지개를 만드는 한국어 교사

2007년에 상하이 영사관에서 문화원을 개원하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학기가 시작했을 때, 초급 2반은 한국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반이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반짝이는 눈빛으로 15명의 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60세쯤 되어 보이는 정평기 씨였다. 그녀는 비교적 큰 키에 낡은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넓은 어깨가 더 넓어 보였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하지만 앞머리는 다 새어 나와서 지저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 온 우리 반 학생들과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녀 앞에는 카메라 삼각대가 놓여 있었는데 남루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꽤 비싸 보이는 비디오카메라였다. 내가 “이건 뭐예요?”라고 묻자 정평기 씨는 중국어로 “딸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제가 대신 왔어요. 제가 녹화해 가면 이것으로 한국어를 배울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딸이 인터넷으로 영사관 문화원에 등록했고 그녀는 딸 대신에 수업을 녹화하러 왔다는 것인데, 이 황당한 말을 믿어야 하는지, 그건 안된다고 돌려 보내야 하는지 금방 판단이 서지 않았다.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는데 말싸움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어서 그냥 수업을 시작했지만, 수업을 하는 동안 계속 돌아가는 비디오카메라가 자꾸 의식되어 긴장도 되고 내 말은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정평기 씨는 녹화에만 관심이 있을 뿐 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을 할 수도 없고, 수업에 참여시키려니 그것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 정평기 씨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을 했다. 문화원 근처에 한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는 돌솥 비빔밥을 먹으면서 일상적인 수다를 떨었다. 보기와는 달리 그녀는 푸동에서 좋은 집에 살고 있고, 스물세 살의 딸이 막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지만, 시간을 내어 올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정평기 씨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둘 사이에 벽이 조금 허물어졌다고 느껴질 무렵 내가 제안을 하나 했다. 삼십 분씩 일찍 나와서 나는 한국어를, 정평기 씨는 상하이말을 가르쳐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상하이말은 중국어이기는 하지만 중국 사람들도 배우지 않았다면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사실 상하이에서도 중국 표준어만 익히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녀가 미안하지 않게 공부하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정평기 씨와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점심에 만두나 김밥 같은 것을 먹으면서 일대일 한국어 공부가 시작되었다. 이때는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은 중국어로 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수업 시간에 질문할 문장도 눈치 못 채게 연습을 시켰다. 수업이 시작되면 예문을 들어서 말할 때도 “여보세요? 거기 정평기 씨 집이지요?”, “정평기 씨는 빌리 씨에게서 꽃을 받았어요.”처럼 정평기 씨를 넣어서 말했다.

   

이런 밀착 수업이 한 달쯤 지나자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벌어진 수준 차이가 점점 좁혀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늘 받아쓰기는 다 틀리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받아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는 한 문장만 외워 오라고 했다. 하나라도 맞아서 자신감이 붙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무엇을 하실 거예요?”라고 불러 주면 받침을 빼고 쓰거나 소리 나는 대로 쓰던 정평기 씨가 두 문장을 외워서 썼다. 아주 잘했다고 하면서 백 점을 맞은 것처럼 기뻐했더니, 어제 두 시간이나 외웠다고 씩 웃으면서 말하는데 괜히 내가 미안해지기도 했다. 두 개를 외운 것을 시작으로 정평기 씨의 받아쓰기 실력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업이 끝나고 본문을 녹음해 달라고 했다. 집에 가서 딸과 함께 읽는데 수업 시간처럼 잘 안 읽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졸지에 아나운서처럼 매 과를 또박또박 읽어 주게 되었다. 그리고 받아쓰기 다섯 문제도 불러 주었다. 그렇게 해서 정평기 씨는 딸을 위해서 녹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가장 모범생이 되어 열심히 수업을 즐겼다.

   

사진1

   

문화원에서는 한국의 유명하신 분들을 초청해서 중국인들에게 한지 공예, 도자기 만들기, 부채 만들기 등의 문화 체험을 하게 해 주었다. 학생들의 질문과 시연을 도와주기에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나는 문화 체험 선생님을 도와 손발이 되어 주기도 했었다. 정평기 씨는 나이가 많아 손이 좀 굼떴다. 다른 학생들처럼 빨리빨리 따라하지 못했는데 이때도 내가 옆에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재료가 남으면 딸의 몫까지 하나 더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반 학생들은 끈끈한 정이 생겨 주말 저녁에 같이 모여 밥을 먹기도 하고, 우리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도 했었다. 이럴 땐 정평기 씨가 주도적으로 회비를 걷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선생님께 저녁을 사는 거라고 하면서 총무 역할을 도맡아 해서 우리 반 왕언니로서의 자리를 잡아 갔다.

   

나는 삼 개월에 한 번씩 문화원 소식지 《재미있는 한국어 한마디》의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어 회화 하단에 주제에 맞는 학생들의 작문도 함께 실었다. 그달은 ‘첫 월급을 받으면 뭐 할 거예요?’라는 주제였는데, 주제와 조금 거리가 있는 정평기 씨에게는 딸이 첫 월급을 받고 무엇을 했는지를 쓰라고 했다.

   

“저의 딸은 방학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첫 월급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건강식품을, 저에게는 속옷을 사 주었습니다. 딸은 모두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는 딸을 볼 때 행복감에 젖습니다. - 정평기”

   

나는 정평기 씨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었고, 글과 함께 실릴 사진도 예쁘게 찍어 주었다. 얼마 뒤 소식지가 나왔을 때 학생들은 아주 기뻐했다. 글이 실린 학생들에게는 소식지 여러 부를 건네주면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하라고 했다. 물론 그중에서 제일 기뻐한 것은 정평기 씨였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고 수료식과 반별 장기자랑이 있는 날이 되었다. 나는 객석에 앉아서 우리 반 학생들 사진을 찍으려고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 반 학생들은 다 같이 하얀 티셔츠에 빨간 하트가 그려진 옷을 맞춰 입고 나와서 슈퍼 주니어의 <당신이니까>를 합창하면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에 한 학기 동안 수업했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과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한 편의 비디오가 되어 지나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흘러나오는 영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노래가 끝날 무렵 한 학생의 손에 이끌려 무대 위로 올라갔고, 학생들은 하트 대열로 서서 나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건네주고 노래를 마쳤다. 그때의 발표회는 한국어 교사로서 평생 잊지 못할 가장 소중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달갑지 않은 수업 녹화로 시작된 정평기 씨와의 인연이, 나에게 큰 보람이 되어서 돌아왔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면서 가끔 초심을 되돌아본다.

   

사진2

   

평화방송의 <우리가 무지개처럼>이라는 다문화프로그램의 초대 손님으로 출연해 이런 말을 했었다.

   

“수업시간에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그냥 이웃집 큰언니나 이모같이 편안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어요.”

   

과일 장사를 하는 베트남 학생 남편이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보내 준 사과 한 봉지가 있는 곳, 말이 통하지 않는 우즈베키스탄 며느리가 요즘 왜 밥을 잘 안 먹고 잠만 자는지 물어봐 달라는 시어머니의 전화가 오는 곳, 드디어 임신했다고 말하는 학생과 부둥켜안고 함께 기뻐하는 곳, 스승의 날이라고 정성껏 쓴 편지를 건네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곳. 이곳이 바로 살아 있는 한국어 교실이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이 공감하고 진심을 나누는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가 포근하게 느껴져서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같지는 않지만 달라서 차별받지 않고 함께 무지개 색을 내면서 하나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자리의 중심에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보람차게 밝게 웃으며 학생들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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