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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통신원 편지
빌헬름 폰 훔볼트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독일 편

빌헬름 폰 훔볼트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class=

독일은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세계 학문을 주도해 온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철학, 언어학 등 인문학과 물리학, 화학 등 기초 자연 과학은 물론 음악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도 독일인들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지대했다. 이것은 독일이 정치적으로 여러 영방 국가로 분리된 시절부터 각 영방마다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키워 온 데다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현재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 분리되었음 등 강성한 나라들이 근대 이후 정치적인 힘을 얻으면서 각 분야의 인재들이 그 역량을 더욱 크게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덕택이다.   1871년에 독일 제국이 통일될 때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곳은 지금의 독일 북부 대부분과 폴란드 영토 대부분, 러시아 일부칼리닌그라드 주까지를 영토로 삼고 있었던 프로이센이다. 프로이센은 정치적인 힘이 강성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주변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였다. 1794년부터 유럽 역사상 최초로 국가가 주도하는 공교육을 시행하였고 1810년에는 근대적 체계를 갖춘 대학의 효시가 되는 베를린 대학교를 설립한 것을 프로이센의 교육 정책 중 대표적인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본관 입구. 2013년 10월 7일 조원형 촬영.class=  

프로이센에서 세운 베를린 대학교는 현재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대학교 설립을 주도한 교육자이자 행정가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의 이름을 딴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 등과 교분을 쌓으면서 바이마르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신성 로마 제국 해체1806년 당시 교황청 주재 프로이센 공사로 재직하는 등 독일 역사의 격변기에 각종 공직을 역임하기도 했던 학자이자 정치가 훔볼트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교육 개혁을 국정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전인적 교육을 추구하는 학교 체제를 구상했다. 베를린 대학교 설립은 그러한 개혁 조치 가운데 하나로서 추진되었는데, 훔볼트가 신설 대학교의 설립 목표로 내세웠던 이념은 ‘교육과 연구의 통합Die Einheit von Lehre und Forschung’, ‘학문의 자유die Freiheit der Wissenschaft’, ‘학생의 전인적 교육eine allseitige Bildung der Studenten’ 등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하는 등 나라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훔볼트는 무엇보다 교육과 연구를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던 것이다.

 

1)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누리집2014년 5월 18일 기준 참조.

  훔볼트 대학교 공식 휘장. 빌헬름 폰 훔볼트와 그 동생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class=  

물론 베를린 대학교가 문을 열기 전에도 볼로냐, 파리, 빈, 하이델베르크, 프라이부르크 등 여러 유럽 도시에 대학이 설립되어 있었고 이 대학들은 지금도 오랜 역사를 지닌 명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1810년에 개교한 훔볼트 대학교를 근대 대학의 효시로 이야기하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대학 설립 이념이 그 이후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의 대학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근대 대학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정치적으로 힘을 잃고 나서 자칫 큰 혼란에 빠질 뻔했던 시기에 그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한 선각자의 교육 철학이 독일은 물론 세계의 대학 교육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등 유명한 학자들을 교수로 초빙하여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 명문으로 발돋움한 베를린 대학교는 그러나 20세기 중반 나치 독일의 패망과 동서독 분단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폐교와 재개교를 겪은 데 이어 사실상 두 학교로 분단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 대학교 중앙 캠퍼스는 베를린 시내 한복판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불과 900미터가량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브란덴부르크 문이 동서 베를린의 경계가 되면서 학교 문을 다시 연 1946년 이후 운영 권한이 자동으로 소련 점령군에게 넘어갔고 이에 소련의 이념을 지지하지 않았던 교수들과 학생들은 동베를린을 탈출하여 1948년 서베를린 남서부 달렘 지구에 베를린 자유 대학교Freie Universität Berlin를 설립했다. 한편 동독에 남은 기존의 베를린 대학교는 1949년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독일은 1990년에 재통일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 두 대학교는 서로 다른 학교로 남아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빌헬름 폰 훔볼트는 바스크어와 자위어를 연구하고 언어의 개별성과 보편성에 대해 통찰한 언어학자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프로이센의 정치가이자 교육 철학자로서 베를린 대학교를 설립한 사람이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후대에 남은 업적을 통해서만 훔볼트라는 역사 속의 사람을 평가할 수밖에 없지만, 그 인격의 바탕에 사람과 나라에 대한 강한 애정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렇게 다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기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한다. 말하자면 훔볼트는 관념적인 측면에서만 ‘전인적 교육’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전인적 인간이 되어 훗날 독일과 세계의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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