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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먹이’가 아닌 ‘음식’을 먹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음식을 ‘우아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스 신화에 기댄다면 프로메테우스와 헤파이스토스 덕분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덕분에,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대장 기술을 배운 대장장이 덕분에 우리는 음식을 우아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가 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불의 열로 무언가를 익힐 수 있는데 이 덕분에 인간의 먹거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불에도 잘 견디고 튼튼하기도 한 각종 조리 도구와 식사 도구 덕에 동물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굽다, 끓이다, 삶다, 찌다, 지지다, 볶다, 튀기다, 부치다’는 모두 불을 이용해 재료를 ‘익히는’ 과정이다. 이 중에서 ‘굽다’는 특별한 도구 없이 그저 불 위에 재료를 얹으면 되니 가장 먼저 이용된 방법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익힐 재료와 불을 분리하되 열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필요로 한다. 재료를 익히는 도구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도구는 ‘솥’인데 이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냄비’는 난방과 취사가 분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부뚜막이 아닌 화로나 가스레인지 등에 올릴 때는 작고 가벼운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냄비’다. 그런데 이 말의 기원이 영 애매하다. 냄비는 우리의 전통적인 주방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옛 문헌에는 보이지 않다가 19세기에 ‘남비’가 보인다. ‘남비’가 ‘냄비’가 되는 것은 ‘아비’가 ‘애비’가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남비’란 말의 기원을 일본어의 ‘나베(なべ)’로 보는 것에 있다. ‘나베’가 ‘남비’로 바뀌는 것은 말소리의 일반적인 변화로는 설명이 안 된다. 말 끝에 있는 ‘베’가 ‘비’로 바뀌는 것도 이상하지만 ‘ㅁ’이 끼어드는 이유도 알 수 없다. ‘나베’를 ‘남와(南鍋)’로 쓴 사례도 발견되는데 여기서 ‘남’을 따온 것일 수도 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나베(왼쪽)와 양은 냄비(오른쪽)| 나베(왼쪽)와 양은 냄비(오른쪽)

  우리말 속에 들어와 있는 일본말에 대해서 우리는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고유어가 있는데 굳이 한자어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냄비’에 대해서만은 관대한 편이다. 19세기 이전에 들어와 우리말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웃 간에 말과 글이 오고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솥’의 다른 말인 ‘가마’는 일본어에서도 똑같은 뜻, 똑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니 ‘냄비’의 빚은 이미 갚은 것인지 모른다. 말과 글이 오고가는 자연스러운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특히 한글날 즈음만 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를 ‘냄비 근성’이라 하여 우리의 뿌리 깊은 습성처럼 비하하는 것은 더더욱 기분이 나쁘다. 열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최선인 냄비는 죄가 없다.

  갖가지 방법으로 조리를 한 음식은 각각의 상태에 맞는 도구를 사용해 입에 도달하게 해야 비로소 마시고 먹을 수 있게 된다. 솥이나 냄비에 익힌 음식 중에는 따뜻하게 먹어야 제맛이 나는 것들이 있다. 특히 국물이 있는 찌개나 국은 따끈한 상태에서 먹어야 하고, 일부 탕류는 펄펄 끓는 상태에서 먹기도 한다. 이런 음식에 입을 가져다 대면 화상을 입기 십상이니 다른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숟가락이다. 오래된 무덤을 파 보면 우리의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도구가 바로 숟가락이니 우리의 음식 문화에서 숟가락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우리의 상차림에서 먹고 싶은 반찬을 쏙쏙 골라 먹는 데는 젓가락이 제격이다.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우리만 유독 쇠로 된 무거운 젓가락을 쓴다. 집고, 찢고, 찍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의 청동 수저| 고려 시대의 청동 수저

  그런데 ‘숟가락’과 ‘젓가락’은 서로 다른 맞춤법 때문에 자주 거론이 된다. 비슷한 구성으로 보이는 합성어인데 받침이 각각 ‘ㄷ’과 ‘ㅅ’인 것이다. 이 두 말에는 모두 ‘가락’이 들어가 있으니 ‘술’과 ‘저’가 ‘가락’과 결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젓가락’은 소위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지만 ‘숟가락’이 문제다. ‘술’과 ‘가락’이 결합될 때도 ‘사이시옷’이 필요하니 ‘숤가락’이 되고, 과거에는 이렇게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숟가락’으로 바뀐 것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예로는 ‘이튿날, 사흗날, 삼짇날’ 등이 더 있다. 이러한 예들도 있으니 ‘숟가락’을 ‘숫가락’으로 쓰고 싶어도 ‘숟가락’으로 쓰는 것이 맞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 ‘수저’라 하는데 이는 ‘술(匙)’과 ‘저(箸)’가 합쳐진 말이다. ‘술’은 ‘밥 한술’이란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고, ‘저’는 본래 고유어인데 한자 ‘箸’를 빌려 적은 것으로 보인다. 두 말이 합쳐질 때 ‘ㄹ’이 ‘ㅈ’ 앞에서 떨어져 ‘수저’가 된 것이다. 음식을 먹는 도구를 가리킬 때는 ‘수저’라는 말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각각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대신 이 도구를 만드는 재료와 함께 쓸 때는 ‘수저’를 써서 ‘금수저’, ‘은수저’ 등으로 쓴다. 이 말들은 그저 재료를 구별하기 위한 것일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밥을 먹는 도구가 어쩌다 사람의 신분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부유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가리킬 때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팍팍한 현실에 대한 자조의 표현이니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금수저’란 말에 숨겨져 있는 오류가 맘에 걸린다. 요즘 쓰이는 말은 ‘금수저’이지만 이 말의 근원은 ‘은수저’ 그것도 영어의 ‘silver spoon’인 것은 분명하다. 영어의 관용적 표현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가 격을 더 높여 ‘금수저’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독에 반응하는 은의 특성 때문에 임금을 비롯한 부유한 이들이 사용하기도 했고, 아이들의 백일이나 돌 선물로도 흔했으니 ‘은수저’는 그리 낯선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부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금수저’를 추가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수저’에 있다. ‘silver spoon’을 ‘은수저’로 번역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니 ‘스푼(spoon)’은 ‘숟가락’으로 번역해야 더 정확하다. 그러니 ‘금수저론’도 ‘금숟가락론’이 되어야 하고 다른 등급의 ‘수저’도 모두 ‘숟가락’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냄비’도 다른 나라 말에서 들어온 말이고, ‘금수저’도 다른 나라의 속담에서 유래한 말이다. ‘냄비’의 용도를 감안하면 이 말은 우리말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수저’는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다. ‘금수저’를 ‘금숟가락’으로 고치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등급을 수저로 매기는 세태가 문제다. 현실에서는 금수저나 은수저로 밥을 먹는 이는 드물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저는 손잡이 쪽에 인삼이 새겨진 스테인리스 수저다. 현실의 ‘금수저’들이 온갖 사고를 치는 소식들이 들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스테인리스 수저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사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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