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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우리말

맛의 말, 말의 맛

딱딱하고도 부드러운
얼음과자

  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 나아가 차가운 얼음을 먹을 수 있다면 잠시나마 더위를 이길 수 있다. 더운 여름날 얼음을 얻기 위해서는 기계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는 냉장고가 해결해줬다. 그저 물맛만 나는 얼음이 아니라 특별한 맛이 가미된다면 금상첨화다. 이 또한 설탕을 비롯해 맛과 향을 더해줄 감미료가 해결해 준다. 이들을 물과 함께 얼려서 먹으면 달콤한 맛과 시원한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1960년대에 이후 대중화된 ‘빙과류’는 이런 바람을 담아서 만들어졌다.

서울하드 비석  ‘빙과(氷菓)’를 한자의 뜻에 따라 해석하면 ‘얼음과자’인데 약간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과자’는 밀가루를 반죽해 구워 내는 것인데 얼음을 구워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빙과’는 과자라기보다는 얼려서 먹는 후식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빙과는 역시 ‘하드’다. 장사꾼들이 메고 다니던 상자를 열면 드라이아이스의 하얀 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그것 말이다.
아이스크림 광고  ‘하드’는 주전부리의 이름으로서는 꽤나 이상하다. ‘하드(Hard)’는 ‘딱딱한’이란 뜻이니 ‘하드’만으로는 이름이 될 수 없다. ‘딱딱한’이 꾸미는 명사가 있어야 하는데 꾸미는 대상 없이 그저 ‘딱딱한’이 주전부리의 이름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이상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아무래도 이 주전부리를 이 땅에서 본격적으로 시판하기 시작한 제조사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오래된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광고에 ‘하드 아이스크림’ 또는 ‘하드 아이스 스틱’이란 문구를 넣었던 것이다. 광고 문구에는 ‘하드’가 꾸며 주던 대상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것들을 떼어 내고 그저 ‘하드’로만 불러 이름이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제조사의 광고에 들어 있는 ‘하드 아이스크림’이라는 표현 역시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설탕과 각종 감미료 및 향료를 섞어 얼리면 얼음보다는 부드럽지만 여전히 딱딱하고 퍼석거린다. 그런데 우유를 더해 잘 저어 주면서 얼리면 차갑지만 혀에서 부드럽게 녹는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진다. 얼음은 얼음이되 크림처럼 부드럽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이스크림의 제조 방법이 더 복잡하고 재료비도 많이 드니 ‘하드’보다는 더 높은 등급의 생산물이다. 이런 사정을 뒤로한 채 ‘하드 아이스크림’이라는 이상한 조합으로 광고를 한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하드’와 ‘아이스크림’은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았기 때문에 제조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하드’라고 불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왕국 영어권 아이스크림

  이후 ‘하드’는 ‘아이스케이크’로 슬그머니 이름이 바뀌었다. ‘하드’보다는 나은 이름이기는 하지만 ‘아이스케이크’ 또한 정체불명의 말이다. 이 주전부리를 영어권에서는 ‘아이스 팝(Ice Pop)’, ‘아이스캔디(Ice Candy)’, ‘아이스 롤리(Ice Lolly)’, ‘팝시클(Popsicle)’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아무래도 ‘아이스케이크’는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만든 이름인 듯한데 우리도 가끔 ‘아이스께끼’란 일본식 발음으로 이 말을 쓰는 것을 보면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한때 ‘아이스께끼’가 짓궂은 사내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몹쓸 놀이를 가리키기도 했는데 지금은 사라져 그나마 다행이다.

일본 아이스크림  중국에서는 ‘하드’와 ‘아이스크림’을 독특한 방식으로 받아들여 쓰고 있다. ‘하드’ 혹은 ‘아이스케이크’는 중국에서 ‘쉐가오(雪糕)’로 불린다. ‘雪糕’의 ‘雪’은 ‘눈’을 뜻하고, ‘糕’는 ‘떡’이나 ‘빵’을 뜻하니 ‘눈떡’이나 ‘눈빵’ 정도의 뜻이다. 중국에서는 외래어를 가능하면 중국어로 의역해서 받아들이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뜻하는 ‘빙치린(冰淇淋)’은 언뜻 보면 정체불명이다. ‘冰’은 얼음을 뜻하는데 ‘淇’와 ‘淋’은 자주 쓰이는 글자도 아니고 뜻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冰淇淋’의 비밀은 ‘淇淋’의 발음 ‘치린’에 있다. ‘아이스’는 ‘冰’으로 뜻을 살려 바꾸고 ‘크림’은 ‘치린’으로 최대한 비슷한 발음으로 살린 것이다.
북한 아이스크림  북한에서도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은 필수다. 한때 북한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가능하면 외래어를 피하려 하는 북한이니 그럴듯해 보이는데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미지수다. ‘보숭이’는 ‘고물’을 뜻하는데 얼음과 고물이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는 ‘에스키모’란 상표명이 아이스크림을 대신하고 있다. 개인이 기계를 들여다가 ‘아이스크림’이나 ‘까까오’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지만 ‘에스키모’란 상표명의 아이스케이크가 양산돼 대대적으로 유통되다 보니 상표명이 이 부류의 제품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북한에서는 ‘에스키모’가 천하를 통일했지만 남쪽에서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딱딱한 빙과류는 ‘아이스케이크’라는 이름으로 통칭이 되고 ‘바’를 끝 돌림자로 쓴 제품들이 수없이 많이 출시되었다.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쌍쌍바’, 도둑들이 싫어한다는 ‘누가바’ 등이다. ‘쌍쌍바’는 이름대로라면 네 쪽의 ‘바’가 들어 있어야 하는데 차마 ‘쌍바’라고 이름을 지을 수 없어 ‘쌍쌍바’가 된 것으로 보인다. ‘누가바’의 ‘누가’는 씹어 먹는 사탕 종류인 ‘nougat’인데 아는 이가 드물다.

  진짜 아이스크림은 ‘콘’이란 돌림자를 달고 출시된다. ‘콘(cone)’은 본래 ‘원뿔’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본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원뿔형으로 포장된 아이스크림의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도대체 왜 그 시각에 만나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지만, ‘열두 시에 만나요.’로 시작되는 광고 음악과 함께 ‘대박’을 친 아이스크림이 ‘부라보콘’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덕이다. ‘떠먹는 아이스크림’ ‘빵빠레’와 ‘퍼먹는 아이스크림’ ‘투게더’, 그리고 입에 전혀 붙지 않는 31가지의 이름을 알아야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콘’이다.

겨울왕국 영어권 아이스크림

  ‘딱딱하고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에 붙여진 다양한 이름들을 보게 되면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게 된다. 외국에서 기술이 개발되어 이 땅에 흘러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 이름이 외국어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제조사의 욕심 때문에 ‘하드’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이름이 붙은 것, ‘콘’이 본래의 뜻과 상관없이 아이스크림을 대표하게 된 것 등은 납득하기 어렵기도 하다. 상표 이름으로 지어진 갖가지 괴이한 이름들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빙치린’처럼 의역과 음역을 넘나들기에는 우리말의 발음과 한글 표기가 너무도 자연스럽다. 엄격한 언어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북한마저도 외래어 상표명 ‘에스키모’가 단어로 굳어진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만드는 사람과 사 먹는 사람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는 문제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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