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블로그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궁금한우리말

맛의 말, 말의 맛

흥분의 도가니탕?

  음식점에 가 보면 그 음식점에서 팔고 있는 음식이나 재료의 효능에 대해 길고도 자세하게 써 놓은 설명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문구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임금에게 바친 진상품이거나 임금과 관련된 일화들이 꼭 들어 있다. 몸에 좋다는 성분은 다 들어 있고, 먹기만 하면 원기가 왕성해질 것 같다. 그 증거는 우리의 옛 의서나 저명한 서양 학자의 연구에서 끌어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저기서 따온 것들을 조합하다 보니 대부분의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이 되지 않는 비문이고, 맞춤법이 틀린 것도 부지기수다.

설렁탕 설명 이미지

  우리가 먹는 다양한 음식 중 ‘탕(湯)’의 대표 주자라 할 만한 설렁탕도 마찬가지다. 설렁탕 전문점의 벽면에 음식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빠지는 법이 없고, 그 내용은 당연히 임금과 관련이 있다. 음식의 이름을 역사와 관련짓고, 한자로 풀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농탕’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풍년이 들기를 바라며 임금이 제를 올리던 제단이 선농단(先農壇)인데 제를 올린 후 소를 고기와 뼈째 고아 백성들과 함께 먹었다. 선농단에서 먹은 탕이니 ‘선농탕’인데 소리가 변해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음식 이름을 최초로 붙인 이,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이는 대개 찾기 어려우니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유래담이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것이라면 그 다음은 말소리의 변화를 고려해서 그 진위를 파악해 볼 수도 있다. ‘선농탕’설은 말소리와 그 변화의 과정만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라면 상표 중에 앞에 ‘신(辛)’이나 ‘진’을 붙인 것이 있는데 이것을 각각 [실라면], [질라면]’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나면], [진나면]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표기나 발음 모두에서 이러한 혼란이 나타나고 있으니 ‘선농’이 ‘설롱’으로 발음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어’와 ‘오’는 아주 비슷한 소리여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설농’이 ‘설렁’이 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설농’은 본래 ‘ㄹㄴ’이 겹치는 것이니 발음은 당연히 ‘ㄹㄹ’로 되고 그에 따라 표기마저 바뀌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은 ‘눈처럼 진한’이란 다소 억지스런 한자어를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 문제다. ‘슐루’나 ‘실러’를 기원으로 하자면 설렁탕이 외국의 음식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슐루’나 ‘실러’가 ‘설렁’으로 바뀌는 것까지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적어도 말소리의 변화만 따져 보면 쉽게 설명되지 않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설렁탕집에 가서 조금 비싼 것을 먹고자 하면 설렁탕보다 몇 줄 아래를 보면 된다. 어김없이 ‘도가니탕’을 발견하게 된다. 밥상머리, 아니 식탁 머리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반가워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도가니탕은 곰탕의 한 종류이되 소의 연골을 둘러싸고 있는 살인 도가니를 주재료로 하는 탕이다. 약간 투명한 빛을 띠며 씹는 맛은 찐득하다. 소 한 마리를 잡아 봐야 그리 많이 나오지도 않으니 값이 꽤나 비싸다. 본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소의 모든 부위를 맛있게 먹고자 만들어 낸 요리일 텐데 이것이 오늘날 혼란을 자아낸다.

도가니탕

가마솥에 불

  ‘도가니’는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을 뜻하기도 한다. 높은 온도에서도 타거나 녹지 않으며 안의 금속 내용물만 녹을 수 있도록 만든 그릇이다. 여기에서 의미가 확대되어 흥분이나 감격으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주로 ‘흥분의 도가니’란 관용구로 쓰인다. 그런데 도가니를 실제로 본 이들이 드물다. 주물 공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일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 도가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 덕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앞으로 쓰임은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 단어다.

  그런데 엉뚱한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렁탕집에 갔더니 펄펄 끓는 음식을 가져다준다. 몇 술을 뜰 때까지도 여전히 끓는다. 그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도가니탕’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흥분의 도가니탕’이라고……. 장난으로 시작된 이 말이 어느 날 신문 기사의 제목으로 버젓이 등장하게 된다. 쇠를 녹이는 도가니는 모르지만 펄펄 끓는 도가니탕을 아는 이들은 그 말이 맞는 것으로 착각한다. 먼 훗날 ‘흥분의 도가니’가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도가니탕이 잘못 표기된 기사 화면 캡쳐
 

  말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말을 잘못 분석해 일어나지 말아야 할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흥분의 도가니’가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바뀐다면 이는 낯이 뜨거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말의 표현력을 늘려 나가는 변화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이것은 그저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더욱이 ‘말과 글로 먹고사는’ 기자가 이러한 실수를 범한다면 기자로서의 근본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 <운수 좋은 날>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먹어 둬라.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설렁탕은 썰렁한 탕인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읽은 이는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병든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왔건만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발견한 남편을 그려본 이, 설렁탕 국물이라도 더 먹이려고 소금을 많이 넣어 짜다고 국물을 더 받아 아들에게 부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본 이는 그렇게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렁탕의 뽀얀 국물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가를 아는 이는 설렁탕을 ‘썰렁한 탕’이라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의 그릇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아는 이라면 ‘흥분의 도가니탕’이란 썰렁한 농담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더보기

가장 인기 있는 기사 +더보기

이벤트 신청

이벤트신청하기

이름

휴대폰번호

이벤트
정답

파일첨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동의]

1) 수집목적 : 상기 이벤트는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이벤트 참여를 통해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 이벤트 참가자분들이 웹진을 계속 구독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2) 수집항목 : 닉네임, 비밀번호, 이메일, 휴대폰번호, 댓글, 비밀댓글 여부, 정보수집동의 여부, 웹진수신동의(구독자 확대를 위해 실시하는 이벤트이므로 개인정보수집 동의시 웹진 수신을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3) 이용 : 이벤트 당첨시 경품 발송, 당선작 발표, 웹진 발송 4) 보유기간 : 경품 수령 확인시까지(1개월), 단 웹진 구독용 정보는 <해지>시까지 이메일만 보유 5) 정보보호 책임자 : 이벤트 대행사 (주)인포아트 서지민(02-2269-5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