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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 놀라운우리말

국어 교실에서

그렇게 교사가 된다

신선

교육 현장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참 뿌듯하다. 무엇보다 1급 학생들과 함께하는 10주는 마법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한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10주 후에는 일상생활에서의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그중 한국어와 유사하지 않은 언어 체계를 가진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은 정말 신비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자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 학생들이나 일본 학생들은 한국어를 더 친숙하게 느끼기도 하고, 한국어와 몽골어는 어순이 같아 몽골 학생들은 한국어를 어렵지 않게 느끼는 편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학생들은 한국어와 아주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는 아랍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어 배우는 것을 아주 어려워한다. 한국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언어인데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가나다를 배우면서 따라서 써 보는 순간부터 큰 좌절을 느끼곤 한다.

몇 해 전에는 13명의 학생 중 8명이 사우디아라비아 학생으로 구성된 1급 반을 맡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아랍권 학생들을 만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어떻게 학생들을 대해야 할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첫 수업 날, 레게 머리를 한 학생부터 풍성한 나무와 같은 곱슬머리 학생까지 각양각색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고 어떻게 수업을 진행했는지도 모르게 긴장 속에서 수업을 마쳤다. 그러나 내 우려와 달리 사우디아라비아 학생들은 한국어에 흥미를 보이며 수업을 잘 따라왔다. 하지만 압둘라라는 학생은 반 학생들 중에서 유독 학습 속도가 느렸다. 매 순간이 난관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고유어로 숫자를 세는 것을 정말 어려워했다. 일부터 십까지 ‘일, 이, 삼…’을 외우는 것은 어렵게 성공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하나, 둘, 셋...’은 도무지 불가능했다.

“선생님, 왜, 일, 이, 삼. 또, 하나, 둘…?”

한국어는 숫자를 읽는 방법이 두 가지인지 어려움을 토로하며 압둘라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사실 나도 한국어 교사가 되기 전에는 한국어로 숫자를 읽는 방법이 고유어와 한자어,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한국어로 말할 수는 있으나 한국어에 대해서 설명을 할 줄은 몰랐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한국어로 숫자를 읽는 방법이 두 가지라는 사실만으로도 힘든데, 숫자와 함께 사용하는 단위 명사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개, 마리, 장, 잔, 권…….’ 그날 압둘라는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는 압둘라였기에 수많은 반복 끝에 마침내 중간시험을 보기 전에 ‘하나’부터 ‘스물’까지를 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 학생은 대학생이 되어 학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지나가다가 오랜만에 압둘라를 만났는데 나를 보고 자랑스럽게 ‘하나, 둘, 셋…’을 외우며 장난을 쳤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우리는 함께 많이 웃었다.

성장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대학원 시절 수업 시간에 언어 교사가 학생의 대답을 기다려 주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기다리는 시간을 3초에서 5초로 늘렸을 때 학습자의 대화 참여가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향상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학생들이 교사의 질문에 대답을 할 때 마음속으로 열을 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것을 실행해 보니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함께 대답을 기다리는 다른 학생들의 반응 때문이다. 초보 교사 때였다. 한 학생이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그 학생을 위해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갑자기 한국어 실력이 좋은 학생들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을 격려하며 학생의 대답을 기다려 주는 분위기의 반도 있지만 교사와 본인의 응답 외에 교사와 다른 친구들의 응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위기의 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의 반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왠지 학생들의 고개가 자꾸만 다른 쪽으로 돌아가고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약간의 적막함을 견딘 후, 대답을 기다려 준 학생에게서 오류가 조금 있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나만 아는 위기는 넘겼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보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교사 혼자서 완성할 수 없는 과제였다. 반 전체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전에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다그치곤 했는데 그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러분, 우리는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할 때 여러분들도 선생님이에요.
같이 잘 들어 주세요. 그럼 친구들이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이후 모든 학생들이 내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는 않았지만 몇 명의 도우미 학생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학기 말로 갈수록 다른 학생들도 수업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실력이 늘어 자연스럽게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줄어 갔다. 나는 그 학기를 통해 수업은 교사 혼자서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 후 나는 학생들에게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가기를 청한다. 이번 학기는 서로 학생들이 다른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성숙한 반이었는데 학기가 끝날 때 한 학생이 그동안 감사했다며 나에게 편지를 하나 주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어 자신이 없을 때도 잘 말할 수 있었다는 학생의 진심 어린 편지가 나만 아는 순간의 선택들에 대한 노력을 보상해 주는 것만 같아 아주 고마웠다.

편지

12월을 맞이하니 작년의 일이 떠오른다. 아리나는 2급에서 만난 몽골 출신의 여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에 휴대 전화를 보고 있길래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휴대 전화 바탕 화면에 맑게 웃고 있는 여자 아기 사진이 있어서 딸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 학생이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조카냐고 물었고 아리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아주 사소한 대화로 지나간 일이었다. 그런데 12월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아리나가 수업이 끝나고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리나가 말했다.

“선생님, 미안해요. 나는 거짓말 했어요.”
“네? 무슨 거짓말요?”
“제 휴대 전화에 있어요. 사진, 딸이에요. 조카 아니에요.
우리나라에서 12월 끝나기 전에 거짓말한 사람에게 진짜 말해야 해요.”

결혼하기 전에 낳은 딸이었는데 아이 아빠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말하는 것이 힘들어서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몽골에서 간호사로 일했는데 사고 이후로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얼른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서 딸을 데려오고 싶다는 아리나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선생님을 볼 때마다 거짓말을 해서 불편했다는 아리나의 마음에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2급 초반의 학생이라서 서툰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해 주는 아리나의 마음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선생님에게 굳이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는 본인의 아픈 이야기를 나누어 주는 아리나가 고마웠다.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아리나 덕분에 나 또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마음을 다시금 가다듬게 되었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의 설렘과 진심에서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인생을 생각해 본다. 학생들과 나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 만나게 된 이 순간들을 나 또한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자 다시 마음을 다듬는다. 이렇게 학생들은 교사를 성장시킨다. 처음에는 내가 그들의 성장을 지켜본다 생각했지만 학생들 또한 나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제보다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시간들에 함께해 주고 실수하는 나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허락해 준 학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편지

1급 학생들이 쓴 편지이다. “선생님이 다시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써야 하는데 “선생님으로 다시 가리치고 싶어요, 나중에 다시 가르치고 싶어요.”라고 잘못 썼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은 나를 가르쳐 준 작은 선생님들이었다.

글_신선
익숙하지만 낯선 한국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재미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하다. 그래서 한국어교육을 좋아한다. 현재 국민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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