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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 놀라운우리말

국어 교실에서

한국어 교실의
만 물 상

김미정

한국어를 가르친 지 어언 10여 년, 먼지 쌓인 앨범을 넘기듯 지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난 10년간 한국어 교육은 많은 변화를 맞았다. 한국어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고, 유학생들의 출신 국가도 다국화되었으며, 코이카, 세종학당 등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은 ‘한국 알림이’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처럼 나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쳐 온 시간의 켜로 쌓인 ‘만물상’이 있다.

결혼 이민자에게 한국어는 제2의 언어라기보다 또 다른 모국어이다. 초기 한국어 교실은 결혼 이민자들이 이국에서 동족을 만나는 편안한 쉼터이자 가정의 압박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였다. 한국어 수업 현장은 한국인으로 진입하는 순간이기에 그들이 오고 간 자리에는 다양한 일화가 추수된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 교사와 여성 결혼 이민자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나 동류의식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우리의 한국어 수업은 ‘중독 같은 수업’이 된다. 그곳에서의 인연이 아직도 생생하다.

항상 열성적이며 독하게 공부하던 한 이민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고 학구열이 높아 내게 자주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곤 했었다.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두 아이와 사는 그녀는 특히 ‘남편은 무엇이 당기나(무엇을 먹고 싶어 할까)?’, ‘어머니, 눈 좀 붙이세요.’와 같은 배려가 깃든(?) 표현을 정확히 알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선생님, ‘닭유방’은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라고 물어 왔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춘 채 질문의 의도를 물었다. 남편이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하며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닭유방’은 ‘닭가슴살’이었다. 그녀는 사전에서 ‘가슴’과 ‘유방’이 나란히 나온 것을 보았을 것이다.

2016.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외국 학생들2016.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외국 학생들 대학에서 만났던 학생들의 모습도 선명하다. 먼저, 몽골에서 온 ‘이도’라는 학생은 ‘킹 세종’을 좋아해 자신의 한국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그는 K-pop을 따라 부르다가 한국 유학까지 하게 된 전형적인 한류 학생이었는데, 지역 축제의 노래자랑은 거의 다 나갈 정도로 흥이 많은 친구였다.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름까지 바꾼 경우는 이 외국 학생이 처음이었다. 그런가 하면 풍물패에 들어가 사물놀이를 신명나게 배운 중국 학생도 있었다. 발표 수업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중국과 한국의 수교에 대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해서 ‘풍류의 도시, 전주’를 중국에 알린, 능력도 외모도 뛰어난 친구였다. 지금이라면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한국어로 너스레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 교실은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보니, 간혹 학생들 간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비단 정치나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다. 출신 나라별에 따라 체감 온도가 달라 ‘에어컨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학생과 러시아같이 추운 지역에서 온 학생이 같은 반에 있을 때 주로 벌어지는 일이다. 러시아 학생이 에어컨을 켜면 아프리카 학생이 끄고, 아프리카 학생이 에어컨을 끄면 러시아 학생이 켠다. 한마디로 교실 내 온도 전쟁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되어 다양한 문화가 융합하는 장이 한국어 공부에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조건이지만, 가끔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먼 곳에서 온 학생들은 “밥 먹었냐?”라는 한국인의 인사말부터 한국 사람들, 환경, 역사, 그리고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까지 다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찾아 주고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자발적 민간 외교관, 그들이 고맙기만 하다. 나 역시 90년대에 프랑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유학생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다. 돌아보면 유학 시절은 생애의 큰 전환점이자 그 어느 시기보다도 생생하게 각인되는 인생의 절정기였다. 유학생들의 추억의 장을 채색하는 게 한국어 교사이기에, 더 멋있고 오래 변치 않는 색이 발하도록 해 주고 싶다. 나의 지난 10년은 내가 베푸는 일방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상호 호혜적인 활동이었음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앳된 결혼 여성 이민자 학생들이 시간이 흘러 ‘젊은 농촌’의 주역으로 지역의 노후화를 희석하며 다산의 풍요로운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며, 그들에게 훈훈한 인간애를 배운 것은 오히려 나였다. 또한 대학에서 다양한 유학생을 만나며 그동안 알지 못하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귀중한 기회를 가진 것 역시 내 쪽이었다.

2017. 진안 마이산으로 소풍 2017. 진안 마이산으로 소풍

학창 시절에 영어를 공부하면서 ‘왜 우리는 영어를 이토록 공부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먼 후일 한국도 국력이 강해지고 발전하면 다른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울 날이 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그저 희망 사항에 그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기대도 안 했던 그 일은 현재 이루어졌고 나는 그 배움터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어 교사이다. 매 학기 새로운 학생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설렘 모드’이다.

글_김미정/강의전담교수
프랑스 부르고뉴대학에서 비교 문학으로 석사 학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전북대학교 국제협력본부 언어교육원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 문학을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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