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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국어 교실에서 놀라운우리말

국어 교실에서

한국어 교실은
다문화 사회의 축소판

허지애

“무슨 일 하세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가르쳐요.” “와! 그럼 영어 되게 잘하시겠다.” “미국에 어학연수 가잖아요. 그때 미국인 선생님한테 영어로 영어를 배우시죠?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배워요.”

지난 11월 22일 개최된 ‘한국 드라마 말하기 경연 대회’ 모습과 참가 전 연습하는 학생들 모습.

한국어 교육을 막 시작했을 무렵의 제 경험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저는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한국어 교육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던 해에 저는 부산의 어느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담당했습니다. 물론 저는 중국어는 전혀 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할 줄 아는 ‘니하오’와 ‘셰셰’가 제가 아는 중국어의 전부였습니다. 수업 초기에는 교실에서 초·중급 수준의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 매개 언어가 없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학생들이 사전을 찾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여 어떻게든 교사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는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단일 국적으로 구성된 교실의 학생들은 별로 관심이 없던 자국 문화에 대해 교사가 낯설어하고 신기해하니 하나라도 더 한국어로 소개하려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이후 교실에서 교사의 외국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학습자들의 문화적 배경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초급 수업에는 자기소개를 비롯해 신변 관련 주제가 많은데,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학생들의 국적의 한글 표기와 국기, 위치를 표시한 지도 자료를 매번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가장 민감한 것이 타이완에서 온 학생이 있는 경우입니다. 중국 학생들은 타이완은 중국이라 하고, 타이완 학생들은 자신을 타이완 사람이라고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초급반에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끼리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그런 데다 위와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할 때면 교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한국어 교실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까지 가르칩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타이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여기는 한국이고 여러분들은 지금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전제를 내걸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한국어’라는 외국어를 매개로 조금씩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복을 입고 절하는 모습 한복을 입고 절하는 모습 자기소개를 할 때 학생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이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반의 학생들 모두가 나이를 밝히고 위아래를 구분하게 됩니다. 한국어 교실은 대체로 성인 학습자라 교사도 학생에게 ○○씨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대부분 20대의 학생이라 나이 차가 크지 않으면 학생들끼리도 서로 ○○씨로 부르지만 간혹 중장년층의 학생들이 있는 경우에는 친근하게 언니, 형 등의 호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손윗사람은 ○○씨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자연스럽게 높임말과 반말에 대한 학습으로 이어갑니다. 높임말은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의 학생들이 어려워하는데,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특히 중국인 학생들이 고급반이 되어서도 자주 실수를 하는 것이 손윗사람의 말에 대한 대답입니다. 상대에 따라 ‘응’과 ‘네’로 단어를 구분하는 한국어와 달리 중국어는 높임말이 따로 없는 데다 이에 해당하는 중국어 ‘嗯(대답할 은)’의 발음도 한국어의 ‘응’과 비슷해서 많이 헷갈려하지요.

한국어 교실에는 세계 각국에서 학생들이 오다보니 종교도 다양합니다. 신앙이 없는 학생부터 개신교, 가톨릭,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종교를 가진 학생들도 있고 드물게 승려, 수녀, 신부 등 복장부터 눈에 띄는 특별한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어느 스님 학생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돈가스라고 답해서 저를 당황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불교와는 다른 탁발 문화에 대한 교사의 지식이 부족했던 탓이지요. 수녀가 되기 위해 수녀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어느 여학생은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하고, 또 어느 스님 학생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과 신체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교실에서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 봐 교사와 다른 여학생들이 조심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신부님 학생은 늘 인자한 미소를 띠고 사람들을 대하여 종교와 관계없이 따르는 학생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슬람교도인 학생들은 이슬람교를 낯설어하고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아 수업 중에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슬람교와 식사 문화, 기도 습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에는 같은 반의 학생들이 알게 모르게 그 학생을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채식을 할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하기도 하고, 라마단 기간 중에는 교실에서 음식물 섭취를 자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은 한국어 교실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 문화를 접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차이를 받아들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한국어 교사에게도 해당되었습니다.

템플 스테이템플 스테이

학생들은 국적, 연령, 종교 외에도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한국어 교사는 학생들의 진학 지도와 상담도 하게 됩니다. 어느 대학의 어느 전공이 유망한지 알아보기도 하고 한국어로 작성한 자기소개서의 첨삭 지도를 하기도 합니다. 또 고향을 떠나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사는 학생들이 많고 주변에 의지할 어른이 없으니 교사가 이모가 되고 삼촌이 되어 한국 생활의 어려움도 들어 주고 연애 고민, 인생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학생의 한국어 실력과 상관없이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고자 하면 많은 대화가 가능합니다.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는 시어머니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를 하기도 하고, 한국의 가족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와 적응을 돕기도 합니다. 학생이 외국인 근로자인 경우에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막기 위해 외국인근로자센터를 연결해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국어교사는 언어 교사이면서 문화 전도사이기도 하고 상담사이기도 합니다. 교육 경력이 쌓이면서 어느새 1인 3역, 1인 4역의 만능 교사가 되어 갑니다. 또한 한국어 교사는 교사 이전에 어느 학생들에게는 처음 사귀는 한국인이며 가장 오랜 시간 만나는 한국인이기도 하고 또 가장 한국어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감동한 순간을 같이 나눌 수도 있고 한국에 받은 상처를 달래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육 경력이 쌓여 갈수록 보람도 크지만 그만큼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국어 교실에서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사도 학생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오늘도 힘차게 학교를 향해 걸어갑니다.

글_허지애
현재 부산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국어를 통해 한 걸음 더 꿈에 다가서고 한 뼘 더 커 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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