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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이 채 연 놀라운우리말

우리말친구들

업무 중엔 남한 말, 집에선 북한 말
“통일돼서 북한 오시면 평양말 쓰실 거잖아요.”

이 채 연

2009년 함경북도 온성에서 내려온 이채연 씨는 새내기 결혼설계사이다.
고객들이 주로 주말에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쉬는 날이 많지 않아, ‘3개월만 견뎌 보자.’ 한 것이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이채연 씨에게서 지난 8년간 남한에서 겪은 ‘말’과 관련된 일화들을 들어보았다.

  • “멍게가 뭐예요? 헤어드라이어가 뭐예요?”

중국 대사관에 잠시 머물다 남한에 혼자 온 채연 씨는 초기 탈북민들에게 지원되는 생활 보조금을 받지 않고 곧바로 직장을 다녔다. 북한에 남은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오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참고로 직장을 구하면 생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해산물을 취급하는 한 식당이었다. 남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부르고 ‘낙지’를 ‘오징어’라고 부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일을 해 보니 모르는 말들이 많았다.

“북한 청진 쪽으로 가면 마른 낙지(남한의 오징어)를 파는 데가 있어요. 저는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했기 때문에 기차역을 지나다가 먹어본 적이 있어요. 그 외에 임연수나 동태를 먹긴 하는데 북한에선 꽃게나 멍게, 해삼 같은 걸 못 봤거든요. “멍게 가져와, 명란 가져 와.”라고 하시는데 첨엔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죠. 메뉴판에 나온 사진들을 보고 이름을 익혔다니까요.(웃음)”

이후 아는 사람 소개로 명동의 한 미용실에서 일하게 됐고, 남들보다 한두 시간 이른 6~7시쯤 출근했다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문을 잠그고 귀가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열심히 한 만큼 남들보다 승진이 빨랐지만 남모를 어려움도 많았다.

“롤판(파마 도구)이 뭔지 몰라서 아이롱(파마 도구)을 갖다 주기도 했고 헤어드라이어를 가져오라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그게 뭐냐고 되물어보기도 했어요. 스트레이트, 쇼트커트, 그런 외래어들이 특히 낯설었죠. 같은 조선말이라도 북한에서는 ‘땋은 머리’를 ‘양태머리’ 혹은 ‘쌍태머리’라고 하거든요. 다른 말들이 참 많아요.”
이 채 연
  • 이젠 영어도 술술, 하지만 함경도 사투리 억양은 그대로 남아

채연 씨는 미용실에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가족들과 재회했다. 엄마와 동생이 남한으로 오면서 더는 북한에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되자 채연 씨는 공부에 매진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수강 신청을 하거나 과제, 발표 등 매 순간이 ‘산 넘어 산’이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이미 제가 북한에서 왔고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어요. 북한에서 왔다고 해도 친구들은 “그래서? 뭐가 문젠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 줬거든요.”

채연 씨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해외에서 어학원 매니저 일을 한 덕분에 영어 회화도 곧잘 했다. ‘ABC’부터 배웠다는 그녀는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지금도 외국인 친구들과 계속 만나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런 채연 씨라도 끝내 고쳐지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억양이다. 한때는 일기예보 진행자의 말투를 따라서도 해보고 때론 핸드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면서 북한 억양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엄마와 함께 살면서 도로 북한 억양을 쓰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우리 사람들(탈북민)을 만나면 그렇게 돼요. 천천히 말할 땐 괜찮은데 급하게 이야기하면 꼭 함경도 사투리가 나오더라고요. ‘금방’을 ‘굼방’으로, ‘빨리 갈게’를 ‘인차 갈게’라고 하고요. 표준어는 끝을 올리는데 북한 말은 내리는 것도 차이점이고, 대체로 북한말이 더 센 것 같아요.”

이 채 연

  • 함경도 사투리 문제 될 것 없지만, 업무 중엔 표준어 사용

채연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온 사실이나 사투리 사용을 숨기지 않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설계사로서 고객들을 대할 때는 표준어를 사용하려 노력한다. 그 이유는 채연 씨 스스로 사투리보다 표준어가 고객들에게 더 신뢰감을 주는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비 신랑 신부님과 상담을 할 때 사투리가 나올까 봐 긴장을 하곤 해요. 가급적 고객들과 같은 말투를 쓰려고 노력하죠. 처음 본 사람인데도 습관적으로 고향을 물어보시는 분들께는 일일이 설명하기 곤란해서 강원도라도 둘러댈 때도 있지만요. 솔직히 서울에 가면 서울말을 쓰고, 부산에 가면 나도 모르게 부산 말 쓰는 거잖아요. 남한 사람들도 통일돼서 평양 가면 평양말 쓸 거고요. 북한 말도 존중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막 남한에 온 탈북 후배들이 남한 말에 쉽게 적응하는 방법을 물어 올 때가 있는데, 채연 씨는 ‘책 읽기’, ‘남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주로 추천한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 말을 따라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책을 읽으라고 권해 주고 싶어요. 어려운 책 말고 학생용 도서, 혹은 만화책 같은 거요. 그런 책은 활자도 크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거든요. 남한 문화나 남한 말 적응에 훨씬 더 도움이 돼요.”

또 이왕 남한 말을 배울 거면 남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고, 가끔 “그건 북한 말이야.”라고 지적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했다.
“북한 말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배우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한에서는 ‘가르쳐 줄게’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배워 줄게’라고 하거든요. 사투리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걸 적절히 지적해 줄 남한 친구가 있다면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듯해요.”

채연 씨가 선택한 길은 결혼설계사이다. 결혼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예물 및 드레스 선택, 사진 촬영 등 결혼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돕는 일을 한다. 채연 씨는 특히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예비부부들이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치를 때 더없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또 올 3월 승진 시험에 합격해서 3급 결혼설계사가 되고, 나중에는 2급까지 꼭 승진하고 싶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영업을 하기에 인맥이 넓지 않다는 약점은 있지만, 자신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 볼 계획이라며 밝게 웃었다.
이 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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